(9)|성도지 부다가야 (5)|노산 이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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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당나라 현장이 이곳 「날란다」를 다녀간 뒤, 중국 본토 안에서는 그를 계승하여 인도로 유학하려는 청년들이 많이 생겨 나온 중에서 특기할만한 이는 의정이란 이였다.
의정 (635∼713)은 현장보다 33세 아래요, 산동성 제주 사람으로서 속성은 장씨였다.
그가 현장의 사적을 부러워하고 또 숭배한 나머지, 37세 되던 해에 인도로 건너와 불타의 성지를 순례하니, 때는 현장이 세상을 떠난 뒤, 7년 후의 일이었다.
그도 이곳 「날란다」에 와서 대승과 소승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고, 전후 20여년 동안 인도 각지를 유력했으며 마지막에 4백부에 가까운 범어경전을 싣고, 본국 낙양으로 돌아가니, 때에 나이는 61세이었다.
그는 그로부터 79세로 장안 대천복사에서 입적하기까지, 자못 18년 동안, 역경 사업에 전력을 기울여, 56부 2백30권을 번역해 내었거니와, 그에게는 역경 이외에 『남해기귀전』(4권) 과 『서역구법고승전』 (2권)의 저서가 있어, 특히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고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저서 속에 우리 신라 승려들의 소식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신라 불교 사상에 있어서, 불법을 연구하려고 혹은 중국으로 또 혹은 인도에까지 온 이들이 적지 않거니와, 특히 진평왕 말기로부터 선덕왕대에 걸쳐 당나라 태종의 정관 (627∼649) 연중에 중국을 거쳐 인도로 건너와 이곳 「날란다」 사원에 유학한 신라 승려의 이야기가 의정의 서역구법고승전 (권상)에 적혀 있음을 본다.
첫째 아리야발마란 분은 범어 이름만 전하고 신라 본명은 전하지 아니하는데 그가 처음에는 당나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뜻을 새우고 인도로 넘어와, 성지를 순례하고 마침내 이곳 「날란다」 사원에 머무르며 율론을 연구하다가 불행히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세상을 마쳤거니와 그가 이곳에 있던 동안은 현장과 같은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혜업이란 이도 그와 같은 시기에 인도로 와서, 불타의 성도 한 곳인 「부다가야」의 대각사에도 있었지마는 마지막엔 이곳 「날란다」 사원에서 불경을 연구하다가 60여세로 여기서 입적했는데 그가 손수 썼던 범어 경전이 이 절에 유물로 전한다고 했건만 이제와서는 물론 찾을 길 없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현조란 이는 범어 이름이 「반가사말저」인데 「티베트」로, 북 인도로, 「부다가야」에 이르러 4년을 지내고 다시 이곳 「날란다」에 와서 3년을 보내면서 「유가」를 연구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또 이곳으로 와서 60여세로 세상을 떠났었다.
그가 두번째 이곳 「날란다」에 왔을 때는 서역구법고승전의 저자인 의정과도 만났으며, 그 때에는 현조를 모시고 따라 왔던 신라 승려 혜륜도 물론 의정과 직접 만났던 것인데 혜륜의 범어 이름은 「반야발학」였다고 적혀 있음을 본다.
나는 「날란다」페허의 이 골목, 저 언덕을 돌아다니면서 특히 우리 신라 승려들이 불타의 성지를 순례하고 불법을 연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수만리 먼 길을 왔다가 그대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세상을 버리시던 것을 생각하고서 그들이 간지 1천 수백년이 지났건만 한 가닥 그립고 비감한 생각을 금치 못했다.
청허선사의 시 구절대로 「청산이 모두 다 내 고향이라」는 도인의 초탈한 경지에서 말한다면 내 고향이 따로 있고 만리 이역이 따로 있는 것 아니요, 또 어디서 나서, 어디서 머물다가 어디로 가는 것도 문답할 거리가 못 되지마는 내야 어찌 그 폐허를 지나며, 우리 신랏적 옛 스님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랴.
옛 스님 계시던 곳을
무심히야 지나리까
이 골목, 저 언덕
어느 방에 계시던고
천년을 사이에 두고
그리운 정을 어쩌리까.
선정에 드신 모습
손수 쓰신 범어 경전
달밤을 뜨락에 내려
거닐던 발자국들
혹시나 끼친 것 있나
벽돌 조각 뒤져본다.
만리 먼먼 길을
구름 따라 오셨다가
먼지를 훌홀 떨고
달 따라 가셨는데
이제 와 누구를 찾아
빈방 기웃거리나.
인생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문답조차 부질없다
바람만 스쳐부네
그 사이 「참주인」 하나
그는 어디 있는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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