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거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석가탄신일이자 일요일아이들과 함께 대전시의 공원인 보문산을 찾았다.
서울서 이사온 지 한달 밖에 안된 우리는 「아카시아」짙은 향기에 넋을 잃으며 우거진 숲의 신선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서울시내 어디에 무료입장으로 이렇게 거닐곳이 있겠는가 생각하며「케이블·카」를 타고 공원에 오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먹고 춤추고, 요란스런 광경이 여기저기서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흉하게 여편네들이 저러니까 신문에서도 꼴사납다고 비난하는 글이 실리지.』남편의 이 말에 나는 잠자코 수긍하며 놀이계 덕택으로 집단으로 무리져서 쥐고 노는 부녀자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싸구려 「나일론」 치마를 펄럭이며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를 애써 부르며 박자하곤 상관없이 뛰는 저 부인들이 흥겹게 보이기보다는 불쌍해 보인다.
까칠한 열굴들이며 색바랜 치마에서 가난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저들이 먹을줄 모르는 술을 마시고 흉을 돋우어 설겆이통에다 남편의 외도나 아이들 건강, 모든 불만들을 담아 놓고 잠시나마 즐거이 보내는데 뭐 그리 크게 지탄할 것이 있을까.
「예의」를 점잖게 차린 놀이라는 게 실상은 재미가 없다는 걸 남정네들이 더 잘 알면서「고성방가」니,「한국의 여인상」을 흐리게 하느니 하고 무조건 비난하는 건 잔인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내민다.
부자들은 멋진 시설의 유흥장에서 마음껏 즐기지 무료입장인 공원이나 산을 구태여 찾을 필요가 없다. 맥주「홀」이나 요정에서의 온갖 꼴불견들은 으레 그런 곳에서는 그러려니 여기고 가난한 아낙들이 무료입장이라 마음놓고 들어온 공원에서 춤추고 노래하면 추하단다.
물론 찬양할 것은 못되나 소박한 서민의 아내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남편들이 가정에 충실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잘 번다면 아낙네들의 놀이계의 방향도 달라지리라 믿고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