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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민주화에 공헌-TV가 한국인에 미친 영향 이상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제 한국의 TV도 15년의 연륜을 쌓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15년 동안 매일같이 TV를 수용함으로써 한국인의 사고와 행위형태는 어떻게 얼마나 변모했을까?
우리는 TV를 가장 구체적이며 즉물적인 전달매체로 규정한다. 특히 TV의 실사성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TV의 화면은 취사선택의 과정과 생략을 통해 압축되고 편집된 것이다. 그리고 TV는 여유 있는 논리의 전개보다 극적 「클라이맥스」를 생명으로 한다. TV에 과정이 있다면 이것은 논리전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극적 「클라이맥스」를 살리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오랜 옛날부터 침묵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의사표현을 억제해 왔기 때문에 변증법적인 논리전개에 약하다. 자기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자초지종의 과정을 생략한 채 결론만을 내뱉는 습성을 생리화한 것이다. 「클라이맥스」를 살리기 위해 교묘히 편집된 TV의 화면과 결론만을 내뱉는 한국인의 「커뮤니케이션」형태는 외형상 비슷하다.
그러나 사실적 구체성을 속성으로 삼는 TV가 수용자를 설득하는 힘을 지니는 반면 변증법적인 논리를 전제하는 대화의 정신을 결여한 한국인의 「커뮤니케이션」에는 피 전달자를 설복할 힘이 없다.
한국인은 회의나 「세미나」에서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지만 「차트」나 도표를 통한 설명에는 쉽게 승복한다.
구체적이고 즉물적인 전달방법이라는 면에서 보면 「클라이맥스」를 살리기 위해 집약된 TV의 화면과 숫자로 집약된 도표는 다를 것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TV의 화면이 선과 명암으로 이루어진 가장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전달수단인데 반해 숫자로 표기된 「차트」는 언어와 문자의 가장 구체적인 전달방법이다.
따라서 TV가 간략하고 집약적인 표현을 즐기는 한국인의 성향을 더욱 조장하고 있는 것이 된다.
TV의 「프로그램」편성을 보면 「모자이크」와 같이 서로 관계없는 토막들을 잡다하게 펼쳐놓고 있다. 이러한 TV를 계속하여 수용하는 동안 한국인의 감정 또한 단절되어가게 마련이다. 마치 체계도 연관성도 없는 「퀴즈·프로그램」의 토막지식같이 우리의 사고와 행위도 연속성을 잃고있다.
TV를 통해 하루에도 몇번씩 「클라이맥스」의 극적 효과를 체험해야하는 한국의 시청자들은 TV가 수로화 한 방향을 쫓아 감정을 유도하고 사소한 일에 유보 없이 흥분하고 좌절한다.
한국인은 TV를 통해 합치(Identification)와 대용만족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나보다도 못난 사람,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TV화면을 통해 확인하고 상대적으로 축복 받은 나의 처지를 정당화하며 자위한다.
한편 TV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직업 관과 계층의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심리적 부담 없이 나와 쉽게 합치시킬 수 있는 인기인을 대중적 영웅으로 승격시켜 가수나 배우의 지위를 높인 반면 전통적으로 높은 지위를 부여받은 직종과 계층을 격하시켰다. 다시 말해 TV는 한국인을 심리적으로 민주화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이제 한국인은 TV라는 색안경을 통해 현실을 보면서도 스스로가 색맹이 되었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하는 TV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연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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