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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볼까요, 금·채권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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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돈의 흐름을 읽는 건 투자의 기본이다. 국내 주식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전 세계에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은 무궁무진하다. 자산별로는 크게 주식·채권·원자재·통화 등이 있고 지역별로 나누면 선진국과 신흥국, 프런티어 마켓 등이 있다. 글로벌 투자자금이 이들 자산 사이에서 어떻게 오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투자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돈이 몰리는 자산은 뜨고, 빠져나가는 자산은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돈의 흐름은 상장지수펀드(ETF)를 분석하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ETF는 각국 주식·채권과 실물자산, 통화 같은 거의 모든 자산에 투자한다. 매매가 쉬워 투자심리의 변화를 거의 즉각적으로 반영한다. 한국투자증권이 미국에 상장된 ETF 중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펀드 50개를 골라 지난달 자금유출입을 살펴봤다. 미국 지역 ETF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 세계 ETF 시가총액의 73%를 차지하고 있다. 분석 결과 주식보다는 채권, 신흥국보다는 선진국 자산에 돈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에 대한 선호도 커지고 있다. 자금 유입세가 가장 강하게 나타난 건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ETF였다. 3~7년물 국채에 투자하는 ETF는 2월에 37억 달러가 몰리면서 한 달 만에 시가총액이 배 이상으로 늘었다. 사실 올해는 세계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채권의 인기가 떨어지고 주가가 상승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일어날 거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1월부터 신흥국 위기론이 등장하면서 채권의 매력이 다시 올라간 것이다.

 2011년 말 이후 계속 자금이 빠져나갔던 금ETF에도 돈이 들어오고 있다. ‘SPDR 골드 트러스트(GLD)’에는 지난달 4억4400만 달러 순유입됐다. 한국투자증권 강송철 연구원은 “경기회복이 시장의 기대보다 늦어지면서 위험자산인 주식보다는 금이나 채권에 대한 선호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선진국과 신흥국 증시가 따로 노는 ‘디커플링 현상’은 ETF에서도 똑같이 재현됐다. 미국 증시를 추종하는 ETF에는 업종을 막론하고 자금이 들어왔다. 특히 바이오와 헬스케어·제약 종목에 돈이 몰렸다.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 인터넷 기업 주가를 따라가는 ‘퍼스트 트러스트 DJ 인터넷’에도 지난해 3월 이후 11개월째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일본(4억5700만 달러)과 유럽(3억5000만 달러) 같은 선진국 역시 미국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반면 이머징 국가에 투자하는 ETF는 된서리를 맞았다. 신흥국 주식 전반에 투자하는 ‘아이쉐어즈 MSCI 이머징마켓’에선 지난달 2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국가별로는 러시아(-10.9%)·인도(-7.2%)의 유출 폭이 컸다. 삼성증권 주식전략팀은 “대부분 투자자가 선진국과 신흥국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있다”며 “신흥국에 대해 여전히 우려스러운 시각을 갖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은 상대적으로 강한 경기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의 눈엔 한국도 크게 보면 신흥국 중 하나였다. 국내 증시를 추종하는 ‘아이쉐어즈 MSCI 사우스 코리아 인덱스’는 지난 1~2월 새 1억2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강송철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지표 부진이 계속된다면 안전자산 선호 분위기는 더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투자자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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