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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에도 서정쇄신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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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건국이후 초유의 대규모 법령 정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작게는 고시·공고에서부터 크게는 국민 생활을 크게 규제하는 각종 법률에 이르기까지 대소 1천 여건의 법률·대통령령·부령·조례·규칙 등이 현재 정비의 도마 위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이 작업은 서정쇄신과 관련해 민폐 또는 민원의 소지를 제도적인 면에서 제거하자는 목적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대민 관계 행정법령정비위원회」는 현재 5백 59건의 각종 문제성 있는 법령을 발굴, 또는 보고 받아 그 중 1백 3건에 대해 개선책을 마련했다.
정비 방안의 내용은 대체로 ▲구비서류 간소화 ▲처리기간 단축 ▲관의 재량권 축소 ▲규제 완화 ▲경유기관 감축 ▲기준의 현실화 등.
○…서울시로부터 위생접객업에 대한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구비서류 중 소방시설 완비증명을 첨부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건물 중 소방법의 시설기준에 합격할 수 있는 건물은 정부 종합청사와 무역회관 등 수 개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그 동안 발급된 「소방시설 완비증명」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는 불문가지라는 것이 정비위 측의 설명이다.
비현실적인 기준의 또 다른 예는 위생검사기준.
서울시 변두리의 한 떡방아간 주인은 정비위 실무책임자인 김효신 조사실장에게 진정을 해왔다.
떡방아간에 쓰는 행주를 보건소 직원이 수거해가 대장균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로 5천 원의 벌금을 물고 난 뒤 홧김에 그 보건소장 집의 행주를 슬쩍 가져다 검사를 의뢰했더니 자기네 행주에서 보다 더 많은 대장균이 검출됐다는 내용.
이밖에도 ▲의례준칙이 규정한 결혼 식순에는 빠져있으나 으레 행해지는 「신랑 신부 입장」과 이에 따른 공무원의 과잉단속 ▲가정의례준칙은 상례의 굴건제복 착용을 금지했으나 상주가 두건을 쓰는 것도 여기에 저촉되느냐 여부 등도 민원대상으로 오르내리는 문제점.
민원과 관련된 문제점 때문에 식품위생법의 개정·의례준칙의 현실화·두건착용 무방의 규정 삽입 등이 개선방안으로 나와 있다.
○…불필요한 행정의 중복도 정비대상.
지금까지 의사가 되려면 국가의 자격시험에 합격, 합격증을 받고 나중에 또 의사면허증을 받아야 했으나 정비위의 검토 결과 합격증과 면허증을 따로 발급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져 자격시험에만 합격하면 바로 면허증을 주도록 했다. 이런 원칙에 따라 관계법령이 개정되면 의사뿐 아니라 약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원·간호보조원·임상병리사·방사선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치과기공사·치과위생사·이용사·미용사 등 무려 13개 전문 직종인 들이 같은 혜택을 받게 되어있다.
복표의 발행이나 사행행위에 관한 영업은 현행 법령에 따라 6개월마다 영업허가를 갱신해야하며 한번 갱신할 때마다 주택채권 30만원 어치 매입·면허세 1만원·기타 대서료 등을 합쳐 30여만 원의 경비가 들게 마련.
비슷한 경우가 마약취급면허로 무조건 매년 12월말로 유효기간이 끝나게 돼있는 실정. 그래서 정비위는 복표 발행 영업허가기간을 6개월에서 3년으로, 마약취급면허 유효기간 한정제를 폐지키로 했다.
관 위주의 행정, 관에 재량 범위를 크게 부여한 법령도 정비 대상.
예컨대 노동청의 「국외 취업 및 국외 기술훈련 허가규정」에 있는 구비서류 중 「…기타 노동청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서류」라는 조항, 조달청 훈령인 「물자조작 관리규정」에 있는 「…조달청의 필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제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 등이 삭제 대상이 돼있다.
○…이밖에도 절차 간소화·경유기관 폐지·서류 간소화·권한 이양 등 수많은 예가 있다.
이런 작업을 진행중인 정비위 측은 당초 민폐는 민원소지의 제거를 목표로 했으나 손을 대고 보니 법령체계의 재정비 또는 행정의 합법성 확립이란 보다 거창한 문제에 부닥쳐 위해·위법 여부문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 예로 법률 또는 적어도 대통령 영으로 규정한 사항을 고시, 또는 부처의 규칙 정도로 규제하는 일이 많다는 것. 상공부는 2만 건이 넘는 고시를 발표하고 있으나 그 중 상당 부분은 내용에 있어 고시사항이 아니라 법률사항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껏 근거 법령도 없는 행정이 고시니 공고니 하는 이름으로 행해져 왔다는 설명이 된다.
정비위는 각종 행정 법령의 이 같은 부조리의 근본적 원인을 ▲관청 편의 위주의 관료주의 ▲무분별한 외국 입법례의 모방 ▲국민의식 수준 등에서 찾고 있다.
○…지난 4월 1일 발족한 정비위는 당초 각 부처 법무관을 중심으로 한 29명의 실무「팀」으로 작업을 시작했으나 작업의 시한성과 업무량 때문에 행정개혁위 직원 39명, 총무처와 법제처 직원 등을 추가로 투입, 72명을 9개조로 나누어 공휴일도 없이 일하고 있다.
실무 「팀」의 작업 결과는 서정순 행정개혁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총무처 차관·법제처 차장·행정개혁위 상임위원·총리 행정조정실장 등을 위원으로 하는 정비위에 상정되어 처리되고 있다. <송진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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