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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메르·루지」에 패배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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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줄타기외교」의 명수라 불리던 「시아누크」는 「프놈펜」이 함락 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를 계속 국가원수로 추대하겠다는 「크메르·루지」와 「시아누크」와의 관계는 과연 어떤 것인가.
「이탈리아」의 저명한 여류기자 「오리아나·파라치」는 73년 6월 「시아누크」와 장장 7시간을 만나 그의 고백적 얘기를 들었다. 가장 불가사의한 회견이라고 평가되고있는 이「시아누크」와의 대화를 「프랑스」의 유력시사 주간지 「르·포엥」이 최근 특집으로 요지만을 공개했다.
「시아누크」는 이 회견에서 『나는 공산주의자도 반공주의자도 아니다』면서 『더 큰 적과 싸우기 위해 「크메르·루지」와 손을 잡았다』고 고백한다. 다음은 「시아누크」의 고백을 요약한 것이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나는 조금 엉뚱한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다. 나는 자동차 경주를 좋아했으며 인생의 쾌락에 내 몸을 맡겼었고 「재즈·오케스트러」를 지휘했다. 나는 「색서폰」 「클라리니트」를 연주했고 「샹송」을 작곡했으며 시골에서 농민들과 같이 「샹송」을 합창하려고 했었다. 더욱이 나는 외교관들에게도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우리들 「캄보디아」인들은 노래를 사랑한다.
왜 국가원수는 권태로운 무도회와 꿩 사냥을 조직해서 엄숙한 방식으로 대사들을 접견해야만 하는가.

<주은래는 나보다 더 황태자적>
나는 이러한 모든 즐거움이 북경에서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맹세한다. 중공인 들은 나를 굉장하게 대우해 주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궁전처럼 거대한 집을 주었으며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 내 관리들에 대해서도 그랬다. 북경에는 1백여 명의 「캄보디아」인이 있는데 나의 몇몇 인척도 있다. 나는 굉장히 아름다운-여름에는 시원한 물,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있는-실내 수영장도 갖고 있다. 이것은 바로 주은래가 나에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뿐인가 주는 무슨 요리, 또 어떤 희귀한 과자도 준비할 수 있는 7명의 요리사와 7명의 과자 제조인을 보내주었다.
또 그들은 「파리」에서 희한한 쇠간까지도 가져다준다. 불행하게도 쇠간은 찜통에 들어있어 내가 원하는 것처럼 신선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내가 먹을 때는 신선하다. 왜냐하면 중공인 들은 나의 식도락에 맞게 이를 준비할 줄 알기 때문이다.
주은래, 그는 내가 결코 가져보지 못한 가장 진정한 친구다. 그는 주의 깊고 세련됐고 우아한 사나이다. 당신들이 만날 수 있는 귀족중의 귀족이다. 그러면 나처럼 공산주의를 이해 못하는 비 공산주의자가 어떻게 주의 친구가 되었는가에 대해 대답하자면 그는 나보다도 훨씬 더 황태자 적인 황태자였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그를 만날 필요가 있으면 나는 그에게 전화로 불러 『내가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을까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당신에게 불편을 끼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곧 가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는『그렇지 않아요, 당신에겐 일이 너무 많아요. 내가 그리로 가지요』라고 항의해도 『아니, 조금도 걱정 말아요. 나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당신 집에 달려가리다』라고 말하고 곧 문 앞에 도착한다.
그는 나와 함께 있으면서 우리의 식사를 나눈다. 나는 그가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할 일로 몸이 조각날 판이며 중공 정부의 거의 모든 근심걱정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모택동은 점점 더 일에서 떨어져 살고, 모의 모든 책임은 실제로 모두가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나는 말하고자 한다. 모의 후계문제도 실질적으로 주와 함께 처리되고 있으며 그래서 나는 주가 나에게 봉사할 시간을 어디서 찾아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쨌든 주는 시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의 집 저녁식사에 나와 「모니카」(주=「시아누크」 부인)를 초대한다. 그는 식사를 준비하는 그의 부인을 나에게 소개해 의식 없이 만나보게 하며 이어 나를 정원에 안내해 모든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떠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절대로 나의 「플레이보이」시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5명의 처를 가졌던 시대에 관해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가 이 같은 것을 이해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굉장히 신중하고도 점잖다. 그들은 우리들이 늘 하는 것과 같은 농담을 결코 하지 않는다. 내 나이 51세인 오늘 단 한 명의 마누라를 데리고 있다는데 나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모니카」가 미인이고 지성적이며 교양이 높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 나이로 보아 5명의 여자들을 거느리기에는 이미 힘겹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북경에서 첩을 데리고 살 수 없다.
중공인 들은 이를 「스캔들」화 할 것이니까.「크메르·루지」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이 문제에 과오를 범했었다. 나는 이를 알고 있다. 「론·놀」이 「크메르·루지」가 정부를 정복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에게 가짜 보고서를 제출했고 나는 「크메르·루지」와 싸웠다.
나는 「크메르·루지」를 배반자로 취급했다. 이것은 내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과오나「론·놀」이 주장한 것과 같이 나는 그들을 학살하지 않았다. 그리고 총살 대상자들이 모두 오늘날 나의 장관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레지스탕스」의 두목 「키우·삼만」은 「론·놀」에 의하면 내가 처형시켰어야 할 장본인이 아닌가? 3개월 전 내가 「캄보디아」에 갔을 때 「삼만」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를 맞아 주었었다. 『각하, 우리들은 당신이 우리를 반대하지 않고 우리들을 내쫓은 것은 바로 「론·놀」이었다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론·놀」이 배반자였으며 바로 그가 당신을 폐위 시키려고 했던 사실도 잘 알고 있읍니다』라고 「삼만」은 나에게 말했었다.

<나의 불행이 그들의 행복>
나는 화를 벌컥 냈다. 『무슨 말이야?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까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잖아?』 그랬더니 『우리를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론·놀」이 우리들의 일을 용이하게 해주었습니다. 「론·놀」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은 정권을 잡는데 40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끼리 말하곤 했습니다. 「론·놀」로 하여금 배반하도륵 내버려두자. 「시아누크」가 왕관을 쓰고 있으면 미국은 결코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시아누크」가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그가 『당신의 불행은 우리들의 행복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라기에 『무슨 이야기냐?』고 했더니 『각하, 만일 우리들이 앞질렀더라면 당신은 대응했었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행동했다면 「캄보디아」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전술이었읍니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규탄하지 않았다. 「크메르·루지」는 그러나 나에 대해서 친절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나의 장관이었을 때 그들은 계속 「사보타지」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해방지역에서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해 『당신들, 일을 이처럼 잘할 줄 알고 있지 않은가, 왜 전에 나와 함께는 이처럼 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각하, 만일 우리들이 당신을 위해 일을 했더라면 우리들은 당신을 더욱 강하게 하도록 봉사했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혁명과는 영원한 이별이지요!』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쓰라린 아픔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한번 더 말했다. 『얼마나 순진한 「시아누크」였던가! 공산주의자들은 정말 지독한 「마캬벨리」군.』 그들은 『그렇습니다, 각하!』라고 아직도 「각하」라 부르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는 나의 2차 적>
나는 맹세하고 되풀이하건대 나의 신념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북경이라 하더라도 나를 바꾸게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또한 나는 반공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그들이 나와 친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점에 관해서는 순진하지 않다. 「크메르·루지」는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 또한 이점을 알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용가치가 있으며 나 없이는 그들이 농민들을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크메르·루지」가 나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나는 완전히 알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농민 없는 혁명은 불가능하다. 내가 그들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지는 날 「크메르·루지」는 버찌의 씨처럼 다시 내뱉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도 나는 잘 알고있다.
여기에도 「크메르·루지」의 한 대표가 있다. 그는 나를 아침부터 밤까지 미행하고 있다. 나는 그가 나를 감시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가 나를 진심으로 싫어한다는 것조차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반감으로 대한다. 그러나 무슨 관계냐?
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떤 환상도 갖고있지 않다. 나는 어떤 점까지는 내가 항상 쫓기고 있는 반감 형태와 같이 그들이 적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선택이 없다. 정치뿐만 아니라 윤리적 「플랜」에서 조차도. 중공인 들도 주된 적과 2차 적인 적 가운데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중공에 있어 주된 적은 소련이고 2차 적은 미국이다. 나에게 있어서 주된 적은 미 제국주의와 「론·놀」의 「파시즘」이며 2차 적은 물론 공산주의자들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주된 적을 쳐부수기 위해 2차 적의 진영에 남아있는 것이다. 「론·놀」과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나는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샹송 작곡가라면 성공했을 것>
그래서 거기서 나는 패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만 관계되는 것이다. 『「시누아크」, 공산주의자들을 조심하라』고 누가 나에게 말할 때마다 나는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앞으로 「시아누크즘」이란 없어질 것이다. 한번 더 「시아누크」가 숙청되면 「크메르·루지」만이 남게될 것이다. 나는 비극적 인간이다. 나는 두 철망사이에 끼여서 두 해결책 중 선택할 것을 의무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모든 자유주의적 사상가들의 「심벌」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면 나는 「앙코르」 「캄보디아」의 고도로 갈 것이다. 나는 한대의 훌륭한「메르세데즈·벤츠」를 사서 「앙코르」에 정착할 것이다. 내가 지배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마치 「크메르·루지」가 나를 국가원수로 계속 원하는 것처럼 「앙코르」는 굉장한 일거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의식 때를 제외하고는 「프놈펜」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크메르·루지」가 국가원수로서 이상 더 원치 않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기를 원한다. 나는 철저한 반군대주의자다. 작년에 북한의 어떤 군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군 참모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는 당신이 직접 군대를 장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당신은 경력으로나 직무상으로나 하나의 군인이다. 나는 예술가다. 나는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고 나는 극장·영화·음악·문학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대답했다. 결국 나는 실패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내가 정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인생은 좀더 존경받을만한 것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내가 「샹송」을 작곡하는데 만족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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