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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데이터, 세상을 읽다

늙었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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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미혼 젊은이들의 성에 대한 금기를 깨준 TV 프로그램 ‘마녀사냥’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의 성공 비결은 대다수의 선량한 친구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때문입니다. 순결을 강요하던 유교문화가 흔들린 지 오래되었지만, ‘누구나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은연중에 강요하던 게 우리네 성(性)문화입니다. ‘마녀사냥’은 ‘누구나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공론화해줌으로써 젊은 사람들에게 안온감을 제공한 것이지요.

 미디어의 역할이란 유효기간이 지난 금기를 없애고 서로의 일상을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 또한 남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주는 게 아닐까요. 과거 농업사회로 뭉쳐 살았던 우리 사회는 더욱 끈끈함(stickiness)이 높은지라 유독 남들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최근 3년 동안의 온라인 소셜미디어 문서로 빅데이터 분석을 해봤더니, 우리 사회 중장년층이 친밀함을 원하는 정도가 결코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음이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제2막을 살아가며 정서적·신체적으로 다른 사람과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성욕’이라는 키워드는 중장년층 커뮤니티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20년 이상의 결혼생활을 정리하는 황혼이혼의 비율이, 결혼 4년차 미만의 신혼이혼의 비율을 추월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별이나 개인사 등으로 홀로 사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65세 이상의 재혼율이 10년 전에 비해 2~3배나 증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의 애정사와 관련한 우리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자식들은 헤어지거나 돌아가신 분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리고 재산 분할과 같은 현실적 문제 때문에 남겨진 부모님의 ‘사랑’을 터부시합니다. 혹 이는 먼저 떠난 분들을 우리의 머릿속에 박제하고자 하는 이기심은 아닐지요.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인 ‘섭생’과 ‘주거’만으로 살아간다면 이는 인간다운 삶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사람(人) 사이(間)의 정서가 배려받을 수 있는 인간다운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의 금기를 깨는 ‘마녀사냥 시니어’의 탄생을 기원합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