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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젊은 세대와 상생의 기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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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정년연장 의무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지만 개별 사업장에서의 시행을 위한 준비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관건은 60세 정년연장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누가 부담해야 할 것이냐로 귀결된다. 노동계는 현재의 임금수준을 그대로 둔 채 정년만 연장하자고 주장한다. 기업이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라는 뜻이다. 법 통과 당시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에 대해 선뜻 수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년연장이 산업현장에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냉철히 따져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최근 학계의 분석에 따르면 정년연장으로 인한 추가 비용 부담이 자그마치 90조원이라고 한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 321개 상장회사의 순이익 78조원보다 많음은 물론,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비용(13조7000억원)의 6배가 넘는 액수다. 모든 부담을 기업이 떠안기가 불가능한 이유다.

 우리 주변의 대다수 고령근로자들은 임금수준보다 안정된 고용환경을 원하고 있다. 물론 임금수준과 고용안정성 모두 충족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과도한 인건비 부담으로 현재 57세 전후의 정년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수많은 기업들에 두 가지 혜택을 다 제공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60세 정년연장의 막대한 비용을 과연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기업에만 부담을 강요한다면 결국 신규인력 채용을 주저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사실 정년연장이 부담이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대다수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직무의 가치, 성과와는 무관하게 연령, 근속연수로 임금이 결정되다 보니 고령자 고용을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 고령자 친화적인 고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답은 현재의 연공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법 시행일까지 2년밖에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을 감안할 때 전면적인 임금체계 개편은 쉽지 않다. 따라서 과도기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데 노사의 노력이 먼저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경총은 개별 기업 노사에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동시에 도입하기를 권고하고, ‘경총 임금피크제 모델’을 제시하였다. 즉 정년연장으로 늘어난 인건비 부담 중 60%는 기업이 부담하고, 나머지 40%는 근로자와 고용보험에서 분담할 것을 제안하였다.

 60세 정년은 이제 현실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기업들은 정년연장 문제를 부담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묵혀두었던 기존의 인사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노동계 역시 대승적 차원의 고민과 협력이 필요하다. 경영계가 내민 손을 부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주기 바란다. 60세 정년제가 연착륙될 때 비로소 기업과 근로자, 더 나아가 미래 노동시장에 진입할 젊은 세대가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