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공급의 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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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본격적인 농사철에 접어들었는데도 올해 공급할 농약 값이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어 제때에 공급이 안될까 걱정된다. 가격 결정이 늦어짐으로써 농민들이 바쁜 일손을 놓고 농협에 가서 손에 익지 않은 이른바「각서」라는 걸 써 주고야 겨우 몇 봉지의 농약을 얻어내는 일은 없어야 된다.
창고에 농약을 잔뜩 쌍아 놓고도 당장 급한 농민들에게 앞으로 값이 오르면 돈을 더 내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행정은 결코 잘된 행정이 못된다. 심지어 어떤 지방에서는 아예 지난해의 두 배를 넘는 값을 미리 받아 두고야 종자 소독약을 내준 데도 있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것저것 번거로워 시중 농약 상을 찾아보아도 약삭빠르게 지난해 재고마저 모두 감추어 버린 상태에서 과연 농민들이 열을 내어 농사짓고 싶은 생각이 날지 의심스럽다.
시한 영농계획이다 뭐다 하여 기화 있을 때마다 영농자재의 적기공급을 강조하는 농정당국이 번번이 주요물자를 제때에 공급하지 못하여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켜 온 전례를 생각하면 농약의「각서판매」는 오히려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 할지도 모른다. 또 물량이 확보되어 있더라도 이전 값으로 말 수 없는 고충도 없지 않을 것이며 더러는 농가의 가수요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이런 사소한 행정차질의 하나하나가 모두 증산의욕의 감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이다.
유례없는「인플레」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촌에서는 지금 농사여건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비록 정부가 고미가 정책을 내걸고는 있으나 아직도 가격 면에서의 생산지원을 충분히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에서 비료나 농약·농기구 등 모든 영농자재 값이 잇달아 올라 생산비부담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생필품 값까지 올라 충분한 농산물 가격지원이 뒤따르지 못할 경우 농가경제의 압박은 매우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양곡적자해소를 위해 단계적으로 곡 가를 현실화하겠다는 정부가 과연, 어느 선까지 가격지원을 해줄지는 두고보아야겠으나 어차피 단계적인 현실화라면 당연히 비료·농예 등 주요 농용 자재 가격의 원가상승요인도 단계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인플레 부담의 농 공간 형평을 째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최근 이루어진 영농관련 공산품의 가격현실화 과정에서는 이런 형평이 거의 고려되지 않은 일방적인 현실화였다. 농약의경반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지난해농사철에도 가·6%나 올렸던 농약 값을 이번에도 40% 정도 올려 줄 것이라지 만 기왕에 값을 올려 주지 않으면 안될 처지라면 최소한 영농에 차질이 없도록 때를 잃지 않아야 옳을 것이다.
예년의 경우 같으면 적어도 총 수요량의 40% 이상이 벌써 농가에 확보되어 있어야 농사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 하니 가격인상은 하루 빨리 매듭지어야겠다.
더우이 작년에 이은 잇따른 이상난동으로 병충해가 한 달이나 앞당겨 번질 우려가 있다는 농촌진흥청의 경고도 있고 보면 농약의 적기공급은 더욱 시급하다 할 것이다.
기민성 있는 농정을 다시 한 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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