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사람 투자도 귀재 … 후계 후보들 황금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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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82)이 은퇴해도 버크셔해서웨이가 잘 굴러갈 가능성이 엿보였다.

 버핏은 1일(현지시간) 발표한 2013년 실적보고서에서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가 꼽은 종목들이 내가 고른 종목보다 수익률이 좋았다”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평균 수익률보다도 높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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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버핏의 뒤를 이어 버크셔해서웨이 투자를 책임질 최고자산운용책임자(CIO)의 후보자들이다. 버크셔해서웨이 주주들의 눈에 천부적 투자자인 버핏만큼 미덥진 않았다. 이른바 ‘포스트 버핏 리스크’다. 하지만 이날 버핏은 “그들이 자신보다 좋은 실적을 냈다”고 공식 인정했다. 이는 버크셔해서웨이 지난해 순이익이 역사상 최대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주주들에게 반가웠을 소식이다.

 콤스와 웨슬러가 얼마나 잘했을까.

 정작 버핏이 이날 내놓은 지난해 실적 보고서엔 두 사람의 종목 선정과 투자 결과가 구체적으로 들어 있지 않았다. 다만 데이비드 카스(금융) 하버드대 교수 등 ‘버핏 애널리스트’들이 두 사람이 어떤 종목을 골라 얼마나 수익을 냈는지를 분석해 냈다.

 카스 교수 등에 따르면 콤스와 웨슬러가 고른 종목은 모두 19개였다. 모두 지난해 사들인 것은 아니었다. 콤스는 버핏의 부름을 받고 3년째 버크셔해서웨이 돈을 굴리고 있다. 웨슬러는 2년 동안 자산을 운용했다. 두 사람의 지난해 수익률은 44.3% 정도였다. 여기엔 시세차익뿐 아니라 배당수익도 들어 있다.

 반면 버핏은 자신이 직접 고른 종목에서 “25.6% 정도 벌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라고 투자전문매체인 시킹알파가 전했다. 후계자 후보들의 수익률이 버핏보다 18%포인트 이상 높다는 얘기다. 두 사람의 수익률은 지난해 S&P500지수 평균 수익률인 32.4%보다 높다.

 블룸버그는 “콤스와 웨슬러가 버크셔해서웨이에 영입된 이후 종목들이 훨씬 다양해졌다”며 “그들이 자신들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면서 터득한 투자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버핏이 두 후보에게 버크셔해서웨이 자산 가운데 많은 부분을 맡기진 않았다. 두 사람이 지난해 맡아 굴린 돈은 157억 달러(약 17조원)였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지난해 자산 1175억 달러의 13.4% 정도 된다. 로이터통신은 “버핏이 둘에게 ‘작은 돈’을 맡겨 테스트했다”고 했다.

 비즈니스위크는 “버핏이 공식 문서로 ‘잘했다’고 밝힐 만큼 두 사람의 성과가 뛰어났다”며 “버핏이 은퇴한 뒤에도 버크셔해서웨이가 좋은 투자 성과로 주주들을 기쁘게 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버크셔해서웨이 지난해 순이익은 195억 달러에 달했다. 한 해 전인 2012년 148억 달러보다 31.7%나 늘었다. 덕분에 버크셔해서웨이 현금 자산은 한 해 전보다 14.5% 정도 증가한 482억 달러에 이르렀다. 버핏의 현찰 동원력이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새로운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올해에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버핏이 중시해 온 실적 평가 기준에서 보면 지난해 실적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순이익보다 장부가치 증가율을 중시한다. 지난해 이 가치는 18.2%밖에 늘지 않았다. 순이익 증가율(31.7%)보다 13%포인트 정도 낮다.

 특히 버핏은 1년치보다 5년치 장부가치 증가율을 강조한다. 버크셔해서웨이 장부가치는 2008년 이후 5년 동안 91% 늘었다. 반면 그 기간 동안 S&P500지수 수익률은 128%에 달했다. 5년치 장부가치 증가율이 S&P500지수 수익 증가율만 못하기는 버핏이 버크셔해서웨이를 인수한 196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버핏이 슬쩍 평가 기준을 바꿔 실적을 평가하려고 했다”며 “다른 기업들이 평가 기준을 변경할 땐 강하게 비판했던 인물이 바로 버핏”이라고 꼬집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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