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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미 굳어진 사회주의체제,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에서 특히 우리와 같은 발전단계와 우리의 노동 및 사회주의의 운동사를 고려한 상황들에서 그 누구도 무장권력에 의해 당과 사회에 대해서 당의 정책에 동의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또 지배「그룹」들, 특히 군대를 사용함으로써 더우기 68년8월에 있었던 것과 같은 외국군대들을 불러들여 권력유지의 정당화를 기해서는 안 된다.
50년대 당과 사회에 생성됐던 위기에 이어 60년대에 절정에 달했던 그 위기는 68년1월 이후의 정책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던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자 한다.
8월의 「바르샤바」동맹군의 개입은 이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는 새로운 성격의 위기를 불렀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은 종래의 「위기의 교훈」을 거울 삼아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마련된 노선은 아니었다. 8월 이후의 위기적 상황에서의 진정한 출구는 68년 가을에 당중앙위에 의해 채택되었던 안에 있었다. 그러나 당중앙위의 의장단이 이 안을 취소시키자 나는 이 안의 무효화는 당과 사회를 심각하게 파멸시킬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바 있다.
68년11월의 결의안이 우리들로 하여금 당과 사회의 절대다수가 공명하는 정책통일을 더욱 잘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새로운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위기란 군대를 개입시킴으로써 1월 이후의 당중앙위 정책의 원칙을 폐지시키기를 바라던 분열주의자들 때문에 빚어져 논의된 것이었다.
당의 새로운 지도부는 신 정책의 채택으로 파벌적인 기회주의자들과 야합했다.
어째서 이 정책이 우리 당과 젊은 세대의 지침으로 사용돼야만 했는가?
바로 이런 것을 가지고 「유고」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벨기에」 및 「핀란드」의 공산당과 여타 공산주의 및 국제노동위 등에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었던가?
「루마니아」를 제외한 「바르샤바」동맹국과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의 내정에 군대를 투입했던 8월의 비극적이고도 급박했던 나날들에서 공안기관은 단 한 명의 반혁명분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공안기관은 당 지도부·정부·상임위, 그리고 최고국가위원회의 지도부중 반혁명세력을 적발하여 체포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만일 「바르샤바」동맹군의 「체코」진입이 소련의 관영통신의 발표에서 그들 자신들이 지칭했던 「그룹」최고대표들의 요청으로 야기됐던 것이라면 나는 「체코」공산당과 우리인민들에게 극심한 모욕과 치욕을 자아낸 일부 분열주의자들의 행동이라고 부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렇다, 그들은 국가에 치욕을 안겨주고 인민에 대해 도전했다.
그들이 이를 원했건 아니건 간에 그들은 공산 및 사회주의 운동에 하나의 전율할 일격을 가한 것이다.
우리 인민들의 눈에는 우리들의 자유를 인정한 전통적인 소련·「체코」관계가 굉장히 손상된 것으로 비쳤다.
창조적인 예술과 문화활동분야에서 특히 노동계급이 받은 윤리적 「이데올로기」적 가치기준의 거대한 상실을 알게되어 비판하는 인사들을 박해하자 이를 통탄하는 사회주의의 진보세력을 억압하고 개인적 권력에 연연하는 분자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질식시키는 자들이다.
이 같은 권력에 현재의 정책노선이 결정되는 한 우리사회는 윤리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정체와 인간개선의 타락밖에는 아무 것도 가져올 것이 없다.
1월 이후의 당중앙위와 정부의 정책은 현재 우리 나라에서 그리고 국제노동운동 및 공산주의운동에서 주장하는바 그대로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수정한 것이란 조금도 없다. 【르·몽드지=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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