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금융거래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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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융단은 부실금융거래자 98의 명단을 공개함과 아울러 이들에 대해서는 5년간 금융의 중단뿐만 아니라 그들이 타 기업에서 활동하거나 새 기업을 만들더라도 제재를 받도록 조치했다. 그밖에도 이들에 대해서는 세무조사·은닉재산색출·출국금지 등 조치를 타 기관과 협조로 단행하리라하므로 명실공히 기업인으로서의 역할을 끊는 조치라 하겠다.
그동안 이 사회에서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살찐다』는 사회적 비난이 비등하고 있었음을 상기할 때, 부실한 금융거래자들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차제에 금융이 진실로 정상화 될 수 있는 계기를 얻도록 모두가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로서의 부실기업에 대한 제재조치 보다는 그러한 사실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 조치가 더욱 중요하다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뜻에서 부실금융거래의 발생원인에 대해서 철저한 분석과 대응책이 선행되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문을 닫은 기업에 매질을 가해 보았댔자 이미 낭비된 사회적 자본이 제대로 회생되는 것은 아니다. 또 부실거래자에 대한 개념이 보다 엄밀하게 규정되지 않는다면 제재조치가 결과적으로 큰고기는 눈감아 주는 게 될 것이다. 부실거래자란 무엇인가. 어쩌면 금융지원이 계속되는 한 부실거래자가 아니라는 역설이 성립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실거래자의 개념을 객관화시켜 금융지원여부와 관계없이 부실을 판정할 수 있도록 해야만 비로소 공정한 제재가 가능한 것이다.
또 부실발생의 원인을 기업 측에만 전가시키는 것도 공정치 않다.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본질적인 동기는 윤리관이 아니라, 축적의욕이므로 기업의 윤리성에 너무 기대하는 것은 초점을 잃은 처사다. 오히려 기업의 탈선을 예방하는 것은 금융기관이어야 하며 정책당국의 본래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부실발생의 원인은 1차 적으로 금융기관의 경영자세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그 많은 부실거래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명시적으로 금융기관이 책임을 진 예는 흔하지 않다.
이처럼 모든 책임을 기업 측에 돌리고 그 협조자 내지는 방조자였던 금융기관은 관대하게 보아주는 관행은 사태개선을 저해하는 하나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만일 종전과 같이 금융기관에 대한 문책은 형식적으로만 얼버무리고 만다면 또 다른 부실의 발생을 막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제대로 돌아가는 기업을 지원해 보아야 별로 재미있는 일이 없으니까 부실 일보전의 기업을 지원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자는 생각 때문에 부실거래자가 그동안 누적되어 온 것이 아니었던가.
부실거래자에게 가혹한 문책이 가해진다면 논리적으로 보아서 그를 취급한 금융인에도 응분의 문책이 있어야 균형을 잃지 않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불가피한 정세변동이나 불측의 여건변화 때문에 부실이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미리서 능히 부실을 예상할 수 있었고 또 부실화가 심화하고 있음을 알고서도 사적고려나 문책이 두려워 덮어두었기 때문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 아닌가를 깊이 검토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문책의 대상은 오히려 금융기관이라야 하며 그러한 구태의연한 금융인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금융정화·정상화를 위해서도 당연히 정리되어야 할 줄로 안다.
요컨대 부실거래자는 금융기관 쪽의 잘못 없이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것이며, 때문에 문책은 당연히 균형성을 잃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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