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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의 컬링 아쉬웠지요? 휠체어컬링이 풀어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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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순석·강미숙·김종판·윤희경·김명진(왼쪽부터) 등 휠체어컬링 대표 선수가 지난달 27일 태릉실내빙상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한국 대표는 모두 알루미늄 막대를 활용해 투구한다. [최승식 기자]

장애인에게 세상은 얼음판이다. 차갑고, 자칫하면 미끄러진다. 그 얼음판에서 희망의 스톤을 던지는 장애인이 있다. 국가대표 휠체어컬링 대표선수다.

 보름 넘게 온 국민을 잠 못 들게 한 소치 겨울올림픽이 지난달 24일 성황리에 끝났다. 꺼졌던 성화는 곧 다시 타오른다. 오는 8일부터 17일까지 올림픽이 열렸던 러시아 소치에서 겨울 패럴림픽이 열린다.

 컬링은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메달은 못 땄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패럴림픽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한다.

 지난달 27일 오전 태릉국제스케이트장. 평소와 달리 사람들로 붐볐다. 이상화(25·서울시청)와 모태범(25), 이승훈(26·이상 대한항공) 등 소치 올림픽 스타들이 출전한 전국체전을 보려는 사람들이다. 그 옆의 실내 빙상장은 고요하다. 휠체어컬링 대표팀이 마지막으로 국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적지만 그들의 열망은 이상화 못지않게 뜨겁다.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5명. 한 명은 교체 요원이며 4명이 경기에 출전한다. 컬링과 마찬가지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5명 중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은 지체장애로 하반신이 불편한 윤희경(47·리드)뿐이다. 김명진(43·스킵)과 서순석(43·세컨드)은 교통사고로, 김종판(44·서드)은 추락사고로 장애가 생겼다. 또 다른 여성 선수 강미숙(46·리드)은 혈관 기형이라는 원인을 알수 없는 질환 때문에 가슴 아래쪽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됐다. 장애인이 된 시기도, 이유도 다르지만 이들은 복지관에서 지인을 통해 컬링을 시작했다.

 컬링은 이들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세상과 만나는 창이다. 김명진은 “장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참 좁다. 컬링은 접하기 어렵지만 밖에 나와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서순석은 컴퓨터 프로그램 자바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그에게는 좀처럼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소치 겨울 패럴림픽 출전이 서순석에게는 삶의 이유다. 그는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를 가리키며 “사실 국가대표 출전권 경쟁이 너무 치열해 2018년 평창 대회 때나 출전할 줄 알았다. 종판이 형과 나는 대표 자격을 얻은 뒤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소치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는 사실 경기도청 단일팀이었다. 선수층도 얇고 팀워크가 중요해, 단일팀 중 최우수 팀을 대표로 선발했다. 휠체어 컬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의정부시 장애인종합복지관팀 ‘롤링스톤’ 4명이 주축을 이룬다. 여기에 원주연세드림 소속 1명이 가세했다. 2006년 창단한 롤링스톤은 지난해 대표 선발 포인트에서 국가대표 단골팀 원주연세드림을 1점 차로 제치고 극적으로 패럴림픽 출전권을 얻었다.

 올림픽에서 휠체어컬링은 혼성 경기로 치러진다. 최소한 여자 선수가 1명 출전해야 한다. 한국 대표팀에는 여성이 2명이다. 강미숙은 학창 시절 육상 선수였다. 장애가 생긴 후에도 탁구와 론볼(잔디밭에서 공을 굴리는 운동으로 장애인들이 많이 하는 종목)을 즐겼다. 원주연세드림 소속이지만 대표팀에 발탁됐다. 2008년부터 컬링의 매력에 빠진 윤희경씨는 2011년 여자 선수가 없던 롤링스톤에 스카우트됐다. 윤희경은 “주로 새벽에 집을 비우니 아이들 아침도 못 챙겨줬다. 지난해에는 딸이 고3이어서 더욱 미안했다. 하지만 대표 선수가 되니 아이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3승6패로 예선에서 탈락한 올림픽 컬링 대표팀과 달리 휠체어컬링은 4년 전 밴쿠버 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냈다. 김명진과 강미숙은 당시 멤버였다. 한국이 겨울 패럴림픽에서 사상 두 번째 획득한 메달이다.(첫 번째 메달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패럴림픽 알파인스키에서 한상민이 딴 은메달이다) 대표팀은 연습장이 없어 수영장을 얼려서 연습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강호들을 연파했다.

 이번에는 수영장을 얼려가며 훈련하지는 않지만 환경이 열악한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국내에는 태릉선수촌과 경북 의성 컬링장 2개뿐이다. 장애인 선수들은 이른 아침이나 저녁 등 자투리 시간에 경기장을 쓴다. 이날 훈련도 아침 7시30분에 시작됐다. 김종판은 “일반 아이스링크를 써서 연습하기도 했는데 그래선 전혀 기량이 늘지 않는다”고 했다. 신경용 대표팀 감독은 “컬링장을 쓰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컬링장도 장애인에게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장애인들은 훨씬 더 힘들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최근까지 훈련했던 의성 컬링장은 장애인화장실이 따로 없다. 국민은행·신세계 등이 여자 컬링 대표팀을 후원하지만, 장애인 컬링 대표팀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실업팀도 없다. 이날 선수들은 야외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휠체어컬링은 기본적으로 컬링과 규칙이 같다. 하지만 빗자루질 같은 스위핑은 하지 않는다. 박성근 트레이너는 “휠체어컬링은 투구를 하고 나면 끝이다. 그래서 일반 컬링보다 더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으로도 투구할 수 있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선수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막대(큐)를 사용한다. 휠체어컬링은 한국의 가장 유력한 메달 후보다.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캐나다다. 패럴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올림픽 출전선수와 똑같은 연금 혜택을 받는다.

글=김효경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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