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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가 본 이라크 전쟁] '미국의 가치' 힘으로 세계 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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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계여론이 압도적으로 반대하고 유엔이 인정하지 않는 이라크전쟁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리는 최종목표는 무엇인가.

그는 어떤 야망, 어떤 비전을 가졌기에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오만한 일방주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이라크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렸는가.

부시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제거해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는 것이 전쟁의 당면목표라고 선언했다. 그는 후세인 없는 이라크에 민주정부를 세워 이라크 국민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부시는 거기까지만 말했다.

그러나 부시정부의 실세들로 직접 세계전략을 수립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보수파에 속하는 부통령 딕 체니,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 그리고 정부 밖에서 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보수파(Neo-conservative) 지식인들의 생각을 들여다 보면 부시가 이라크전쟁이라는 열차를 타고 도착할 종착역이 어디인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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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전통적인 보수파와 신보수파는 미국은 미국이 가진 힘(Power)을 미국의 가치를 세계에 전파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가치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따위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소련을 붕괴로 이끈 군비경쟁을 주도한 것도 그들이고, 걸프전쟁의 밑그림을 그린 것도 그들이다.

힘으로 미국의 가치를 전파하는 이상주의 외교를 중동에 적용한다면 첫번째 과제는 후세인을 제거해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그들은 이라크에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그 도미노 효과가 먼저 이웃 이란에 미쳐 민주화 개혁이 일어나고 결국은 중동지역 전체가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런 장밋빛 청사진이 실현되면 팔레스타인 문제가 이스라엘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돼 이스라엘의 안전이 항구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동과 옛소련의 중앙아시아와 흑해 서쪽 연안국들이 표시된 지도를 펼쳐보자. 이라크는 유라시아 대륙의 배꼽 같은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

중동에서 임무를 끝낸 미국의 힘이 카프카스(코카서스)를 넘어 중앙아시아로 전개되면 경제적으로는 새로 등장한 자원의 보고에 접근하고, 군사전략적으로는 러시아의 영향권을 잠식하면서 중국을 배후에서 반달형으로 포위하게 된다.

미국은 이미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에 군사기지를 확보한 뒤 전쟁이 끝나고도 눌러앉아 버렸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톈산(天山)과 파미르 고원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카프카스의 그루지야에는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그 나라 군대를 훈련시키면서 군사적인 교두보를 착실히 다지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에는 부시의 정치적인 후견인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의 것을 포함한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진출하고 있다. 부시가(家)의 오일 커넥션은 특히 두텁다.

캘리포니아 대학 역사학 교수 에릭 로츠웨이에 따르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부시가 모델로 삼는 사람은 25대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다.

매킨리는 1898년 스페인에 전쟁을 도발해 전리품으로 쿠바와 푸에르토리코.괌.필리핀을 미국의 식민지와 보호령(쿠바의 경우)으로 얻은 사람이다.

그때 하바나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해군 함정 메인호가 폭파. 침몰해 2백66명의 군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조사에서 스페인이 관련된 증거를 못 찾았지만 스페인 식민지를 공격했다. 이라크와 알 카에다의 관련이 입증되지 않은 채 이라크를 공격한 것과 같다.

필리핀을 식민지로 획득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는가는 그 뒤의 역사가 말해준다.

미국은 패권이라는 말을 꺼린다. 그러나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은 그 어느 나라도 미국의 힘에 도전할 수 없는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강화해 오래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부시는 그 첫걸음을 중동의 이라크에서 내디뎠다.

후세인 제거와 석유이권 확보는 21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종착역으로 가는 중간역들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라크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후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계획대로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바그다드에서 시가전을 치르고, 그래서 예상치 못한 미군 희생자가 많이 나오면서 전쟁이 장기화하면 세계여론은 더욱 반전의 기세를 올리고 미국의 여론도 지지에서 반대로 바뀔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부시의 전쟁은 미완의 전쟁이 될 수가 있다.

전쟁이 미국이 낙관하는 대로 끝난다고 해도 유엔의 권위와 미국과 동맹국 및 주요국가들 간의 관계를 복원하지 않으면 '사담 이후' 중동의 질서를 개편하는 일이 순조로울 수가 없다.

전리품을 독점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는 것과 자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 부시가 만날 최대의 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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