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택시장 패러다임을 '소유'에서 '거주'로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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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주택임대차 방식을 전세에서 월세 위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전세 수요를 부추기는 전세보증금 대출지원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월세 세입자와 임대인에게 모두 세제혜택을 줌으로써 전세 중심의 주택임대차 방식을 월세 형태로 바꿔나가겠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줄곧 오르기만 했던 전셋값의 고삐를 죄고, 최근 부쩍 심해진 전세수급의 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처방이다.

 우리는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비록 늦었지만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본다. 지난해 하반기 전세대란이 표면화된 이후 주택시장에서는 이미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정부는 이 같은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전세보증금 대출지원을 늘리는 패착을 거듭했다. 전세 세입자를 보호한답시고 보증금 대출을 늘리는 바람에 전세대란을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부른 것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주택임대차 방식인 전세는 주택가격이 계속 올라야 성립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런데 인구구조의 변화와 주택시장의 침체로 주택가격이 오르지 못하거나 심지어 떨어지는 상황에선 집주인이 전세로 집을 빌려줄 유인이 없다. 전세대란은 이런 상황에서 빚어진 당연한 귀결이다. 시장이 이렇게 바뀌는데도 정부는 전세수요를 부추기는 주택보증금 대출만 늘리고 있었으니 주택시장이 안정될 턱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 1월 주택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6.7%에 달했다. 신규 임대주택의 절반이 이미 월세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면 세입자의 월세부담을 덜어주고, 임대인에게도 세제혜택을 줌으로써 월세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 주택시장을 안정시키는 지름길이다.

 정부는 차제에 주택정책의 목표를 ‘내 집 마련’에서 ‘주거 안정’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주택에 대한 인식을 가격 상승을 노린 ‘소유의 대상’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거주의 공간’으로 전환하자는 얘기다. 그러자면 억지로 전세를 월세로 바꾸기보다는 괜찮은 임대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시장이 자연스럽게 적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산 증식을 노린 주택 소유의 유인이 없어지고 월세 부담이 지나치게 크지 않다면 거주공간으로 굳이 임대주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 점에서 리츠(부동산투자신탁)나 민간자본을 공공임대주택사업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은 바람직하다.

 다만 사실상 세금의 사각지대로 방치된 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투명한 과세 강화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월세 임대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월세 임대주택의 공급이 왜곡될 뿐만 아니라 월세 세입자에 대한 세제혜택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