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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무역 확대 못하는 소련의 경제사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1월12일 소련은 72년에 합의했던 미-소 무역협정의 파기를 통고했다. 미국이 소련에 대한 최혜국대우의 전제조건으로「유대」인들의 자유로운 출국을 요구하자 가장 강경한 대응책을 취한 것이다. <편집자 주>
하지만 이와 같은 정치적인 이유 외에도 미-소 양국의 경제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은 많았다. 소련문제 전문가인「허버트·메이어」씨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미-소 해빙 이후 미국의 대소수출은 급속도로 늘어왔다. 68년에는 불과 5천8백만「달러」이던 것이 74년에는 6억「달러」(추계)로 급증한 것이다.
73년에는 유명한 곡물수출 때문에 총액이 12억「달러」나 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일단 논외로 치도록 했다.
이것은 정상적인 수출증가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한편 소련의 대미수출도 같은 기간 중 5천8백50만「달러」에서 3억5천만「달러」로 팽창했다.
금액뿐만 아니라 단위 거래고도 점차 대형화되었다. 예컨대 2억 「달러」짜리 「암모니아」공장, 「보잉」747「점보·제트」기 10대 (10억「달러」이상)의 구입계약 등등이 잇달아 체결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소련이 사들인 것은 대부분 기술 집약적인 기계류였다. 그들은 이 돈을 치르기 위해 모피 (지난 4년간 8백만「달러」어치)·보석(6백만「달러」),「캐비어」(상어알)등을 미국에 팔았다.
어쨌든 양국의 수출입은 지난 1920년대에 그랬듯이 쾌속도로 늘어왔고 사람들은 어느 사이엔 가 이러한 증가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미국은 소련이 필요로 하는 고도 기술제품을 가장 많이 갖고 있으므로 무역증가는 필연적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낙관론은 20년대에 소련이 신 경제정책을 채택했을 때에도 그랬듯이 극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여기서는 20년대의 쓰라린 체험을 되새기느니 보다 이미 눈앞에 닥쳐온 2∼3개의 적신호만 지적해 두고자 한다.
첫째, 소련의 자금사정이다. 소련은 당초부터 고 율의 장기융자를 받아 수입대전을 치러왔다. 미 수출입은행의 경우 연 6%의 만만찮은 이율인데도 소련은 아무런 이해를 달지 않을 정도로 자금사정이 궁색했었다.
둘째. 서방세계를 휩쓸고 있는「인플레」의 영향이다.
일례로 소련의 VAZ자동차 공장은 부품의 일부를 미국산 강 재로 만드는데 그 가격이 지난 1년 동안 무려 29%나 뛰었다.
결국 예산을 증액해서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러한 사태에 대해「모스크바」의 일부 이론가들은『자본주의 국가와 함께 망하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손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숙련노동자 및 사회간접자본의 부족이다.
소련은 실로 방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대륙국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을 개발할 기술자가 부족한 것이다.
마치 거액의 돈을 금고에 넣어 뒀으나 문여는 방법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도로·교통사정이 나빠서 예컨대「카민」강변의「트럭」공장은 자재운반에 차질이 생겨 2년씩이나 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모스크바」당국이 이와 같은 저해요인을 감안,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판단된다. <프레지던트 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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