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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배우는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래의 충격』의 저자로서 유명한 「토플라」씨가 『미래학자』라는 또 하나의 책을 편저해 냈다 .각계의 전문가가 자기 학문의 입장에서 미래를 보는 견해를 수록한 책이다. 그 중 한장을 맡은 인류학자 「마거리·미드」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말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이들이 어른에게 배웠으나 현재는 아이들이 서로서로 배우고 미래에는 어른들이 아이들로부터 배우게 될 것이다』라고. 「미드」여사의 글을 읽으며 나의 순간적 반응은 『설마하니』였으나 다음 순간 나는 그의 예지에 굴복했다 .그의 말이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여러가지 일들이 머리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나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른들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내생각대로 행동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기어이 내가 믿는 대로 처리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비록 실수하고 후회할지라도)하는 일이 생각났다.
미국의 상담심리학자 「칼·로자스」는 말하기를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권위』다 라고 갈파하였지만 우리는 어른들의 말속에서 진리를 찾기보다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진리를 터득하려는 본능적 욕망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어른의 명령과 지시에 복종했고 그럼으로써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안다. 실은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니까 10년에 강산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1∼2년에 변해버리니 「라디오」시대에 자란 사람과 「텔리비젼」시대에 자란 사람은 마치 월 세계에서 온 사람하고 지구세계의 사람 사이에 말이 안 통하고 생각의 기준이 다른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따라서 어른을 우습게 안다기 보다는 애당초 체질이 달라서 동화되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자연히 같은 체질끼리 모이게되고 이야기하게 되고 행동하게 될 밖에. 요새 젊은이들의 친구 좋아하는 정도는 어른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그렇게도 자주 만나고 그렇게도 몰려다니고 떨어지지 못하는 모습이 형제자매간의 우애를 넘어서는 느낌을 준다. 어른은 필요 불가결한 경우를 제쳐놓고는 상대하고 싶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나머지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니 자연 서로 배우고 가르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뭐 중·고등학교 이후의 일이 아니라 유치원 연령에서 벌써 시작되는 일이라 보아야겠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배우는 시대는 이미 온 것 같다. 시대의 변화란 구획선이 분명하지 않고 먼동이 트듯 차차 변하므로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으나 나 자신만 해도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다. 우선 우리 집에서는 「텔리비젼」조정은 아이들의 특권이다. 화면이 잘 안나오면 아이들을 불러댄다.
글쓰나가 철자법이 어정쩡하면 아이들에게 물으면 되고 원고교정도 부탁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가구나 의복의 색조선택, 실내장식의 이모저모랑 꼭 아이들의 의견을 참작해야만 현대감각이 살아난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말도 하기 전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 왔는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엄마의 정성이 가면간만큼, 안가면 안간 만큼 정확하게 반응을 보여 주었으며 앓을 대마다 가르쳐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경외심은 어느 스승도 나에게 가르치지 못한 정도의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배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워즈워즈」도 『어린이는 어른의 어버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정일·숙명여대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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