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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쿵…쿵…쿵…" 복도로 또 긴급 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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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 거실이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있다. 쿵쿵대는 폭격음이 들려온다. 어젯밤과 비슷한 크기다. (잠시 침묵), 미스터 강, 더 이상 전화를 못하겠다. 복도로 일단 피신해야 한다."

21일 오후 8시9분(이라크 현지시간) 미군이 바그다드를 세번째로 공습하기 시작한 순간, 기자와 통화한 바그다드 시민 아흐메드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공습이 끝나면 다시 전화하자"고 1분 만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충격과 공포'로 명명된 미군의 대규모 바그다드 공세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의 다급한 음성은 이날 낮 놀라울 정도로 평안을 유지한 시내 상황을 전화로 전하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20일 새벽 세차례의 공습을 당하며 전쟁의 폭풍에 말려들어간 바그다드는 21일 하루 내내 전기.전화.수도 등 도시 기간시설이 유지되고 방송과 인터넷도 정상적으로 기능했다. 오후 들어서는 전날부터 철시에 들어갔던 상가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바그다드 남부 주택가 '도라'지역에 거주하는 시민 마후드는 "지금 바그다드 북동부에 있는 국립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보러 나가는 길"이라며 "전쟁 첫날인 어제(20일)는 거리에 행인들이 드물었지만 오늘(21일)은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다. 전쟁 전과 거의 다름이 없다"고까지 기자에게 전화로 말했다.

그는 "뉴스를 보니까 북한이 미국의 공격을 비난했다는데 그러면 한국이 (여기보다)더 위험한 상태 아닌가?"하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이에 앞서 20일 낮 시내를 자신의 자동차로 돌아다닌 시민 아흐메드 알 오베이디(30.바그다드 한국무역관 근무)도 "통행인과 차량이 크게 줄고 총을 든 군인과 경찰이 평소보다 서너배 늘어나긴 했지만 그 외엔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고 시내 상황을 전화로 알려왔다.

그는 "주유소도 몇 군데 문을 열고 있었다. 이용 차량이 거의 없어 기름을 사재기하는 차량들로 붐볐던 이틀 전과는 대조적이었다. 문을 연 빵집들의 진열대에도 빵이 충분히 쌓여 있었지만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에 남은 한국인 인간방패 3명 중 한명인 유은하씨도 이날 "19일부터 인터넷이 끊겼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숙소 인근의 호텔 PC방에서 인터넷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자신이 소속된 국내 기독교단체 사이트에 e-메일로 보내왔다.

개전 직후 발동될 것으로 예상돼온 24시간 통금령과 예비군 소집령 및 차량 징발령도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또 바그다드에 남은 외국인들에게는 비자 유효기간이 무기한 연장됐다.

20일 밤 바그다드 시내에 가해진 미군의 두번째 공격은 폭심지 인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큰 공포를 안겨주지 못했다.

그러나 21일 밤(현지시간) 세번째로 바그다드 시민에게 가해진 공습은 첫번째와 두번째 공습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공습이라는 설이 돌아 시민들의 걱정을 더하고 있다.

걸프전 당시 바그다드에서 전쟁의 전 과정을 경험했던 교민 박상화(암만 피신 중)씨는 "걸프전 때 미군은 개전 직후 시내의 중앙전신전화국과 우체국을 맹폭해 수시간만에 통신망을 완전 마비시켰다. 그 결과 이라크군의 연락체제가 두절돼 쉽게 기선을 제압당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개전 이틀이 넘도록 미국이 통신시설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이라크군의 전력이 걸프전과 비교할 수 없이 약화돼 통신시설을 초토화할 필요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朴씨는 "바그다드 시민들이 별 동요 없이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정부.군사시설 등 목표물만을 정확히 맞히는 미군의 '초정밀 폭격'을 이들이 역설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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