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불타는 油井…12년전 악몽 되풀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라크 유전 지역에서 화염이 솟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백개의 유정(油井)이 불탔던 걸프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제프 훈 영국 국방장관은 21일 BBC 방송에 "이라크 남부에서 30개 가량의 유정에서 불이 났으며 이라크 군이 방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남부에는 수백개의 유정이 있다. 아직 피해 규모가 걱정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미국 NBC 방송 등은 이라크 남부의 바스라시 서쪽 80km 지점인 남부 루메일라 유전 지대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메일라는 이라크 최대 유전 지역의 하나로 50억배럴 이상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AFP 통신은 북부 유전지역인 키르쿠크시에서 화염이 솟는 모습이 참차말 쿠르드족 자치지역 내 반군기지로부터 목격됐다고 전했다. CNN은 "기상 예측용 인공위성에서 유전 지역의 화염이 관측됐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전날 "이라크군이 남부 유정 3~4곳에서 불을 질렀을지 모른다. 자세한 정보를 수집 중"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한 관리는 "아직 원유 저장소 등에 불이 본격적으로 옮겨 붙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 관리와 언론들은 전쟁 전부터 이라크가 연합군의 진격 저지와 국제 경제 혼란을 노려 조직적으로 유정에 불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유전 피해가 크면 전후 복구비용 마련에 큰 차질이 생기고 대규모 환경 재앙이 따른다는 예상도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전쟁 초기에 특수부대원 등 수천명의 군인을 침투시켜 유전을 장악한 뒤 쿠르드족 등 이라크 내 반정부 세력들이 유전을 지키도록 할 계획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 군은 1991년 걸프전 때 쿠웨이트에서 퇴각하며 쿠웨이트와 자국 내의 유정 7백50여 곳에 불을 질렀다. 불은 9개월 만에 모두 꺼졌고 복구 비용에 2백억달러(약 25조원)가 들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전쟁 전에 "스스로 국가 자원을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유전 방화 가능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일부 미국 언론은 "유전에 폭발물이 장착돼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상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