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가능한 한 널리 알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0면

“금연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가까운 이들에게 가능한 널리 알리자!” 금연학교의 행동강령 중 하나다. 연초 계획을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문가들은 가족과 친구, 동료 등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언행을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공개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것을 지켜내려는 의지 역시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나 문법적으로는 틀린 표현이다. “가능한 널리 알리자”는 “가능한 한 널리 알리자”로,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라”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라”로 각각 고쳐야 올바른 문장이 된다.

 ‘가능한’은 형용사 ‘가능하다’의 관형사형으로, 그 뒤에 ‘가능한’의 꾸밈을 받는 체언(명사·대명사·수사)이 와야 한다. “가능한 때에 오세요!”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문의해 보겠다”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등과 같이 쓰인다.

 “가능한 널리 알리자”의 경우 ‘가능한’ 다음에 ‘널리’라는 부사가 왔다. ‘가능한’은 체언을 수식하는 관형사형이므로 부사를 꾸밀 수 없다. ‘가능한’이 수식할 말이 없는 상태다. ‘가능한’ 뒤에 조건의 뜻을 나타내는 명사 ‘한(限)’을 넣어야 올바른 문장이 성립된다.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라”의 경우도 ‘가능한 한’으로 표현해야 한다. ‘가능한’은 명사 ‘한’을 꾸미는 말로 사용되고, 이 ‘가능한 한’이 동사 ‘이야기하라’를 수식하는 구조라야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다.

 ‘가능한 한’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또는 ‘가능한 조건 아래서’라는 의미의 부사구다. 뒤에는 당연히 ‘가능한 한’이 꾸밀 수 있는 부사나 동작이 와야 한다. ‘가능한 한 힘껏’처럼 ‘가능한 한’ 다음에 ‘힘껏’이라는 부사가 오거나 ‘가능한 한 갈게’처럼 ‘가능한 한’ 뒤에 ‘가다’라는 동사가 온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일은 가능한 빨리 잊어라” “문제는 가능한 쉽게 출제했다” “가능한 수사에 협조하겠다” “가능한 소금을 줄여라”와 같이 쓰는 이가 많지만 ‘가능한’을 모두 ‘가능한 한’으로 바루어야 한다.

이은희 기자

▶ [우리말 바루기]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