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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 없으면 사상누각|근로자 재산형성법안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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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연내 제정을 추진중인 근로자재산형성촉진법은 형식만은 서독의 재형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현재 서방국가 중 중산층의 보호·육성책을 가장 모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서독이라 할 수 있다. 서독은 정책기조부터 부의 편재예방과 성장혜택의 균점에 두고 있다.
물가안정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어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중산층육성의 기본여건을 보장하는 한편 근로자재형을 위한 금융·세제·행정상의직접지원책도 강력히 시행하고 있다.
직접지원책은 ①주택건설할증금법 ②저축할증금법 ③재산형성 법 등 3개 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택건설할증 법은 내 집 마련을 위한 저축에 정부가 재정자금을 보조하는 것으로 기본할증금은 모든 저축 자에 대해 연간 불입액의 20∼35%, 부가할증금은 저소득 자에 기본할증금의 30%를 추가하는 것이다. 저축할증금은 6년 이상의 장기저축 자에 대해 20∼30%의 기본할증금과 기본할증금의 40%를 부가할증금으로 준다는 것이다.
재산형성 법은 공무원·군인·피 고용노동자에게 사용자가 임금 외에 주는 급 부금에 대해 면세조치하고 할증금을 주는 것이다. 서독의 재형 제도는 근로자의 재산형성자조노력에 대해 정부가「보너스」를 지급하고 또 세제 면에서 기업들도 이에 적극 협조토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재무부가 성안한 근로자 재형 촉진법안은 ①월 소득 20만원이하의 근로자가 매월 임금의 20%범위 안에서 3∼5년의 장기저축을 하는데 대해선 정부가 원금의 30%를 할증금으로 주고 ②내 집 마련을 위해 근로자가 소요자금의 30%이상을 재산형성저축으로 적립할 것을 계약한자에 대해선 6백만원 범위 안에서 소요자금의 50%를 연리12% 10년 이상 상환 조건으로 융자하며 ③기업이 초과이윤 중 일정액을 적립 유보하여 투자재원으로 활용하고 3∼5년 후 이를 근로자에게 환원할 때는 기업 및 근로자에게 감면조처를 강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 우선 주의로 일관해온 정책기조를 바꾸어 근로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시작한 것 같이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근로자재형이 얼마나 정책의 소외를 받고 있나 하는 것은 74년 현재 4백만 명이 넘는 근로자중 월 소득5만원이상이 24·9%에 불과하며 도시근로자의 가계저축으로 영동15평 짜리「아파트」한 채를 사려면 63년이 걸린다는 것은 단적으로 설명된다.
근로자 재형 촉진법안은 이런 사태를 완화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상으로 아무리 구색을 갖추어도 중산층재산형성이 이룩될 여건이 안되어 있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 저소득과 물가안정이다.
소득이 낮아 기본생활을 꾸려가기가 힘들면 아무리 재형 제도가 훌륭해도 재산을 모을 수가 없다.
또「인플레」는 부의 편재를 촉진하는 자극제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근로자재산형성은 밑 없는 독에 물 붓기다. 물가상승 시엔 장기저축은 재산형성은 커녕 원금을 까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증금으로「인플레」잠식을 도저히 「커버」할 수가 없다. 서독의 재형 제도가 성공을 거둔 것은 우선 물가안정이라는 기본바탕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서독은 물가가 연7%이상만 올라도 큰 소동이 벌어진다.
이런 서독과 물가상승에 매우 둔감한 한국과는 같은 재형 제도지만 그 기능 하는 바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또 정책기조도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GNP가 커지고 수출실적만 높으면 모든 경제문제는 해결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풍토에선 중산층의 보호육성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지금은 GNP를 키울 단계이지 분배를 생각할 단계가 아니란 생각이 일반적이면 노동자재형은 구색정도로 취급되기 쉽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마찰 없는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선 자본축적만큼 분배문제도 중요하다는 사고가 일반화되어야 한다.
근로자 재형은 정치·사회적으로도 중대한 문제이다. 국민간의「컨센서스」조성이나 사회의 안정을 위해선 중산층의 육성·보호가 선결과제이다. 따라서 모처럼 시작한 근로자재형제도가 구색을 갖추는 것에 끝나지 않도록 하려면「인플레」를 자극하는 기업주도의 성장제일주의부터 서둘러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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