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 쓰게 됐다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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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네 인사말이 해마다 조금씩 바뀌어지는 것 같다. 요새는 곧잘 『언제 감투를 쓰게 되느냐?』고들 묻는다. 큰일들이 자주 일어날 때에 『감투쓰게 됐다면서?』하면 덕담이겠지만, 어감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예부터 내려오는 인사에는 『진지 잡수셨습니까?』란 말이 보통이었다. 이것은 그동안에는 굶지 않았느냐? 는 물음과도 같아 우리네에게는 결코 상서로운 말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옛날 이런 말이, 점잖은 인사로 통했던 것은 그만큼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게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인사도 하도 난리가 잦아 언제 무슨 화를 입게 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옛 세태를 반영했던 것이라고 말한다고 해방직후에는 『재미가 어떠냐?』는 인사말이 유행했었다. 『재미가 좋으냐?』는 인사말이 그 뒤를 이어 나왔다.
하루 세끼 먹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게 되어 그런 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을 만큼 살기가 편해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상은 한때나마 떵떵거리고 잘 살아보자는 생각을 누구나 다 갖게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래서 사람들의 모든 목표는 『재미를 보는』데 집약돼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말을 뒤집어보면 이른바 재미를 보는 일이 그만큼 쉬워졌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누구나 요령이 있고, 눈치만 빠르면 재미를 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었다. 그러니까 재미를 못 보는 게 오히려 어리석다는 평을 받게 되기도 했다.
그러니 『재미가 좋으셔?』라는 말속에는 그 흔한 재미조차 보지 못하고 있는 자기가 병신소리 듣기가 싫어서 앞질러 물어보는 뜻도 들어있다. 나도 이렇게 재미를 보고 있는데 너는 어떠냐는 것이다.
이래서 「재미보는 일」이 너무 흔해지니까 이젠 재미를 묻는 게 별로 신통한 인사말로 들리지 않게 됐고, 그 대신 새 세태에 따라 『감투쓰게 됐느냐?』는 인사말로 바꿔지게 됐다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감투만 쓰면 모든 「재미」를 다 볼 수 있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보다는 감투자리가 그만큼 흔해진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만큼 사람들이 살기가 편해졌기 때문이라든가, 사람들의 꿈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만 본다면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감투 쓰는, 또는 감투를 쓰려고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의 뜻도 들어 있다.
그러나 그만큼 오늘날 우리주변에서는 감투에의 갈증이 늘어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이렇게 감투도 흔해지면 다음부터는 또 다른 인사말이 나오게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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