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이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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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은 이민들이 세운 나라다.
「워싱턴」에서 「케네디」 「닉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민의 피를 이은 것을 매우 영광스레 여긴다. 그들의 부조가 세운 나라에 끝없는 애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발전에는 이런 이민 후예들의 「프라이드」가 뒷받침되었다.
그런데도 기이한 것은 이민들이 몰려 사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뉴요크」의 「브루클린」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산다. 애란계는 동부에 몰렸다.
「이탈리아」계는 「뉴요크」의 서부 지구에 모여 있다. 그리고 동양계는 「샌프런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 많다.
그러나 어디에 숨어사는지 잘 알 수 없는 두 이민 집단이 있다. 하나는 「멕시코」의 밀입국자들이다. 미국의 이민국은 그들이 1백만명을 넘는지 어떤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막일을 해도 시간당 2「달러」쯤은 벌게 된다. 「멕시코」의 밀입국자들은 1「달러」받을까 말까 한다. 그러니 어엿한 살림은 꿈같은 얘기다. 그런 속에서도 한푼 두푼 모아서 고국에 남긴 가족들에게 송금한다. 또 하나 숨어사는 한국에서 건너온 이민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꼭 이민해야 했던 애절한 사연이 전혀 없다. 일자리를 얻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모두 몇 만·몇 십만「달러」씩의 은행 예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우리는 위장 이민이라 부른다. 그만한 거금이 있다면 조금도 이민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눈총을 받아 가며 이민해야 하는지, 왜 다른 동포들의 눈을 피해 가며 살아야 하는지를 미국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 것도 같다.
대부분의 「위장 이민」들은 몇 년 사이에 치부할 수 있던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을 했다면 으례 부정을 연상시킨다. 그런 풍토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만약에 부정을 통한 치부였다면 이민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도피의 방법일 것이다.
부정이 아니었다면 치부에서 부정을 연상시키는 풍토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있다. 그처럼 엄격한 외환 단속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처럼 거액의 재산을 해외에 반출할 수 있었느냐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별것 아니다. 그처럼 많은 돈을 손쉽게 벌 수 있는 「주변」이 있다면 위장 이민쯤은 누워서 떡 먹기였을 것이다. 그러니 합법적인 위장 이민을 갈 만한 처지라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지위에 있었을 거라는 얘기도 된다.
아직 이들 위장 이민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앞으로는 엄하게 단속하겠다지만 이미 빠져나갈 만한 사람들은 다 빠져나갔다고 봐야 옳다. 약삭빨라야 어느 시대에나 잘 살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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