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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64세 아들 처음 만난 93세 아버지 "늙었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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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늙었구나.”

 64세 아들 강정국씨를 만난 93세의 강능환 할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 한마디를 내뱉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생긴 줄도 모른 채 1951년 남으로 피란했다. 63년간의 잃어버린 세월에도 굽은 등과 갸름한 얼굴을 가진 아들은 아버지를 쏙 빼닮아 있었다. 강 할아버지는 “원…순…실” 잊었던 부인의 이름을 되뇌었다. 결혼 후 겨우 넉 달 만에 헤어져 부인 이름조차 잊어버렸던 그는 북녘의 아들을 만나서야 이름을 기억해냈다. 선반 일을 하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잘려나갔다는 아들 정국씨는 “1971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강 할아버지는 아들의 마른 손을 꼭 잡고 “나랑 닮았지… 아들 모습을 보니 피는 못 속인다”며 울음을 삼켰다.

 20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장엔 ‘반~갑습니다~’라는 경쾌한 북한 노래가 흘렀다. 그러나 60여 년 만에 처음 만난 남북 가족들은 회한과 절절한 사연들로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남에서 올라간 김명복(66)씨는 네 살 때 헤어졌던 북의 누나 김명숙(68)씨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전했다. 2004년 별세한 아버지는 김명복씨에게 “내가 죽더라도 누나를 꼭 찾아라”라는 말을 남겼다. 김씨는 10년간 간직했던 유언장을 들고 이번 상봉길에 올랐다. “어머님도 10년 전에 누님을 기다리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누나 명숙씨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명숙씨 눈에선 눈물이 터져 나왔다.

 흘러간 세월이 건강을 좀먹으며 상봉의 기쁨을 덜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이영실(88) 할머니는 치매로 북한의 여동생 이정실(85)씨와 딸 동명숙(67)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명숙씨는 “엄마, 이모야 엄마 동생”이라며 눈물을 터뜨렸지만 이 할머니는 “그래요?”라며 미소만 머금었다. 김영환(90) 할아버지도 북한에 남겨놨던 아내 김명옥(87)씨와 아들 김대성(65)씨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해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인민군을 피해 혼자 남쪽으로 잠시 내려왔다. 그때 아들 대성씨는 다섯 살이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이들은 서로 필담을 나누기도 했다. 남측 이명호(82) 할아버지를 만난 북한의 동생 이철호(78)씨는 ‘어머니가 형이 고무신을 사주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는 64년 전 어머니께 들은 내용이 담긴 메모를 형의 손에 꼭 쥐여줬다.

 이날 남측 상봉 대상자 82명(동반가족 58명)은 북측 가족 178명을 만났다. 응급차 상봉도 이뤄졌다. 건강악화로 응급차를 타고 상봉길에 오른 홍신자(84) 할머니와 김섬경(91) 할아버지에 대해 북측은 당초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상봉을 제지했다. 결국 취재진 없이 비공개로 응급차 안에서 상봉이 이뤄졌다. 홍 할머니와 김 할아버지는 상봉 후 의사 진료 결과 일정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21일 오전 귀환키로 했다.

 개별 상봉에 이어 열린 만찬에서 남측의 황덕용(81) 할아버지가 북측 안내원에게 “(여동생이) 너무 멀리 있다”고 해 안내원의 도움으로 북측 여동생의 옆자리로 옮기기도 했다. 만찬에서 북측 단장인 이충복 조선적십자회 부위원장은 “누구보다 분열의 고통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여러분이 통일과 평화 번영의 시대를 앞당겨오기 위한 애국성업(과업)에 앞장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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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안 들리는 형제는 필담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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