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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흔쾌해야 아기도 태어나지 않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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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초저출산 극복 아이디어는 나올 만큼 나왔다. 보육비 지원, 부모 육아휴직 등 육아정책부터 최근엔 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여성 경력단절을 막겠다는 방안까지 마련됐다. 돈도 우리 형편에 쓸 만큼은 쓴다. 2006년부터 실시된 저출산 대책으로 첫 5년간(2006~2010년) 42조원을 쏟아부었고, 내년까지 76조원을 더 쓴다. 그런데도 요지부동이다. 흑룡띠 해(2012년)에 출산율이 반짝 1.30명으로 올라간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해엔 다시 1.18명이다.

 이에 벌써부터 일각에선 저출산 대책 회의론과 함께 좀 더 공격적인 인구정책 주문도 나온다. 인구정책의 양대 축은 출산과 이민이다. 출산율 제고에 별 희망이 없으니 이젠 좀 더 적극적인 이민정책이 필요하지 않냐는 말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최근 꾸준히 늘어 지난해엔 144만여 명. 5년 전(2008년 89만 명)에 비해 60% 넘게 늘었다.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내수시장이 위축되며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민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민정책 역시 선진국들도 적극 활용하는 터라 경쟁이 치열하다.

 이래저래 저출산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 인구정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저출산을 넘기엔 산적한 문제가 만만치 않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대답은 뜨뜻미지근하고, 아이를 낳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출산 장애요인의 75%가 ‘출산 및 양육비 부담’과 ‘고용상황 불안’이었다. 돈과 일자리가 문제다. 이에 전문가들은 신혼부부 주택 지원을 위해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아동수당을 주고, 믿을 만한 보육시설을 늘리며, 혼외 자녀를 포용하는 인식의 전환과 같은 종합적 대책을 요구한다.

 한데 이게 전부일까. 왠지 저출산 관련 논의에서 간과하고 있는 문제 하나가 유독 마음에 걸린다. 바로 남성, 아빠의 관점이다. 출산대책은 대개 양육부담을 줄여주고, 출산으로 인해 여성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아빠 육아휴직도 ‘일-가정 양립’이라는 여성정책 관점을 숨기지 않는다. 물론 선진국들의 출산정책 포커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불이익은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당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남성 소외의 현실이다. 남성들은 저출산 대책 역시 여권 향상을 위한 ‘확장된 여성정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아빠의 육아 참여도 그렇다. 남성 입장에선 과거에 없던 짐 하나가 보태진 것이다. 더구나 지금 세대의 남성들은 아버지 역할이 무엇인지 아버지로부터 배워보지도 못한 경우가 많다. 가부장적 문화권에서 아버지는 자식을 보듬어 안고 키우는 ‘아빠’는 아니었다. 또 급격한 경제발전시대, 회사형 인간의 아버지들은 회사일 하느라 아빠를 포기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사회는 느닷없이 ‘이제부터 남성들도 육아를 책임지는 좋은 아빠가 돼라’고 닦달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아빠의 롤모델도 없고, 아빠 교육도 없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가위눌릴 일이다.

 또 결혼을 해야 애를 낳지. 요즘 남성들의 결혼기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각하다. ‘서구 남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라는 만화에 이런 대목이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이 정부(政府)라도 되는 양 무수한 것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그들은 ‘남성다움’을 비난하면서도 설마 그 ‘남성다움’ 속에 내재한 책임감마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벌어졌다. 남자들은 결국 결혼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거친 문제의식이지만 남성들이 느끼는 반감과 소외감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논리적으로 맞는지는 별개로 이런 종류의 소외감이 남성들 사이에 존재한다면 ‘남녀 함께 사는 세상’은 요원한 꿈이고, 이런 가운데 출산율 제고를 통한 인구정책은 참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출산문제는 인류의 일이지 여성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출산정책에 ‘여성 배려’를 강조하는 미사여구만 넘치고, 남성을 배려하거나 설득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젠 남성들을 정책에 참여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때인 듯하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