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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한국의 교육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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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방 후 30년, 75년의 한국 교육을 평가한다면 보는 사람·보는 각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이론의 여지없이 분명한 것은 오늘날 교육 인구·교육비·기타 교육 문제의 모든 덩어리가 엄청나게 커 버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성장 또는 발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이 같은 교육의 성장에서 찾아보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 반면에 이처럼 급팽창한 교육 인구·교육비 등 교육 문제의 큰 덩어리를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감당키 어려운 중하요, 장해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바로 이 무거운 교육의 부담에 국가 사회가 짓눌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교육 망국론을 펴는 견해도 없지 않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교육 문제는 인구문제 일반과 극히 닮은 일면이 있다. 우선 좀처럼 해서는 제어하기 어려운 교육 인구의 폭발적인 「자연 증가」 현상이 그 단적인 실증이다. 개인 소득의 증가율을 훨씬 앞지르는 교육비의 팽창 현상이 또한 그렇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 같은 교육비와 교육 인구의 폭발적 증대에 대해서 교육정책 당국자가, 마치 수부귀 다남을 천지신명에게나 비는 일반의 해묵은 관습을 그저 방관할 수밖에 없는 인구정책 당국자처럼, 거의 무위 무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 74년 한햇동안 학교 공납금은 봄·가을 두차례에 걸쳐 모두 40∼71%까지 뛰어 올랐다. 이것은 6·25동란의 종식 후 평화시에 있어서의 기록적인 상승율을 보였다는 지난해의 도매 물가 지수를 앞지르는 것이다. 굳이 여러 통계 수자를 원용할 필요도 없이 「교육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은 오늘날 모든 서민들이 가장 뼈아프게 실감하고 있는 일상적인 현실이다. 교육비 부담이 전체 생계비의 30%내지 50%를 차지하는 가정이 피조사 가정의 4분의 3을 넘고 있다는 어떤 주부 「클럽」의 보고도 있다. 자녀 교육이 적자 가계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니를 굶더라도 아이들은 가르친다」는 것이 한국의 학부모들이다. 그럼으로써 이제 교육은 학생이나 그들의 학부모― 그리고 그것은 한국 국민 모두라 할 수 있다―에게 있어 하나의 「숙명」이 되어 버렸다.
비싼 교육이 가계의 적자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자식을 학교에 맡긴 한국의 학부모들처럼 약한 존재가 또 있겠는가. 비싼 공납금과 30여종을 헤아린다는 각종 잡부금 외에도 아이들의 성적과 심지어 좌석 배정까지 좌우하는 「봉투」 속의 돈을 매달 따로 학교에 갖다 주어야만 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학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학교에 볼모로 잡히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인질 교육」이라 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 뿐만 아니다. 정상 수입으로 감당할 수 없는 교육비 문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 부패의 직접적·간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럼으로 해서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또 가장 큰 교육비를 부담해야 되는 한국의 중년들은 그 중하에 짓눌려 떳떳한 사회생활을 못하게도 된다. 그 결과는 배우는 자녀들을 「학교의 인질」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학부모까지를 「교육의 인질」로 만들어 가고 있다.
논자에 따라서는 이와 같은 교육 인구·교육비의 증대가 도대체 교육의 발전인지 아니면 후퇴인지를 가름할 교육 발전 지표가 없다는 게 우리 교육계의 난점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유형 무형의 투자는 이른바 자본의 회임 기간이 길다는데 그 본질이 있는 것이요, 무릇 교육의 효과란 오늘·내일 나타나는 눈금을 읽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값싼 비용으로 보다 좋은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교육의 최대 공약수적인 이상이라 한다면 한국 교육의 지난 한 세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또한 세대를 전망하려는 75년의 시점에서 우리가 우선적인 비중을 두어야 할 교육목표는 저절로 분명해진다.
아무도 우리 나라의 교육 인구가 부족하다고 개탄할 사람은 없다. 한국은 다른 개발도상국과는 달리 「배우겠다는 욕망」을 새삼 부채질함으로써 발전 정책을 추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교육열은 그를 선동하기보다도 오히려 진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있다. 요컨대 「보다 많은 사람」에게 교육목표의 1차적 비중을 둘 수는 없다는 얘기다.
「보다 좋은 교육」은 모든 교육이 항상 추구해야 할 영원한 과제다.
교육비를 싸게 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행정적인·교육공학적인 많은 지혜가 여기에 동원되어야 할 것이나, 사교육비에 대한 공교육비의 비율을 높이는 과감한 재정투자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은 이미 「교육」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정치」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한국의 교육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정치가 근본 과제로 삼아야 할 국면이기도 한 것이다.
75년, 한국의 각급 학교 교육과 특히 대학 교육의 전도에는 많은 파란 곡절이 예상되며 형식 교육 분야 이외의 사회교육·성인 교육 분야에 있어서도 중첩하는 난제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그러나 이 모든 난제들을 극복하는 첫걸음은 바로 한국 교육의 전기한 바와 같은 교육비 투자 문제와 함께 개방 체제를 지향하는 국기 아래서 교육이 개방 체제인 사람을 자주적으로 길러 가기 어렵게 제약하는 여러 요인이 너무도 많다는, 구조적 모순임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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