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영삼 신민당 총재·언론인 홍종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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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칠순의 노 기자와 40대의 야당 당수가 대좌했다. 두 분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 얘기도 나눈 숙면의 사이.
인사에 이어 두 사람이 맨 처음 화제에 올린 것은 언론 문제-.
▲홍=역시 난 신문 기자니까 그 입장에서 얘기를 하게 되는데, 신문이란 어디까지나 야당적 입장에서 보고 논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말은 신문이 야당 편에 서라는 얘기가 아니라, 야당까지도 감시하고 편달하고 비판하는 범국민적 입장에 선다는데 신문의 야당적 의의가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나 여당에 대해서만 야당이 아니라 김 총재의 신민당에 대해서도 야당이라는 입장에서 얘기해야 된다는 거예요.
▲김=옳은 말씀입니다. 신문이 야당만 도우라는 것은 아니지만 뭐니뭐니 해도 정부 감시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 것 같습니다. 가령 미국이나 일본이 민주주의도 우리보다 잘하고, 경제 형편도 나은 이유가 뭐냐 할 때 언론 자유가 있다는 점,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연말 대구에서 48시간의 암흑·무법 상태를 겪으면서도 우리에게 언론 자유가 좀 더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언론 자유는 모든 것의 기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있으면 위정자가 민주주의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우리 언론인들은 애는 쓰고 있지만 미·일 등의 언론사에 비해 투쟁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홍씨는 언론 자유와 기업 자유의 불가분성을 얘기했고 김 총재는 민주 회복 문제를 화제로 올렸는데 이 때부터 홍씨는 자기 견해를 말하는 것과 함께 오랜 기자적 습관 탓인지 날카로운 질문도 간간이 던졌다.)
▲김=우리 국민은 이미 이 대통령 초기에 민주주의가 뭔지 경험한 국민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고향에 대한 향수는 어떤 억압·탄압이 있더라도 억누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 회복 운동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확신합니다.
▲홍=도대체 민주 회복이라면 어느 시대에서 어느 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입니까?
▲김=(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언론 자유가 그래도 90%는 있었던 때가 이 박사 초기라고 생각됩니다.
▲홍=지금 대부분의 해석은 유신 헌법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 아닙니까.
▲김=유신 이전의 헌법이 정말 잘 된 민주 헌법이라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홍=이승만 박사 초기에 무슨 민주주의가 있었으며 그때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였을까. 민주주의라면 어느 개인이나 정당이 국민 앞에 함부로 못하고, 국민을 두려워 해야하는 거지.
▲김=엄격한 의미에서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선 참된 민주주의는 없었다고 보겠지만, 워낙 안타까우니까 건국 초기를 그리워하는 국민이 다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홍=건국 초에는 죽을 쑤는지 밥을 하는지 모르던 형편이었으니까…. 오늘날은 국민이 그때에 비해 많이 깨우치고 있다는 점, 그 점에 민주주의의 장래는 있다고 봐요.
앞으로 자유와 권리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사상이 굳어지면서 권력이 국민 앞에 좀더 공손해지는 단계가 와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건국 당시 이 박사는 강력한 정권을 만든다고 내각책임제를 배척하고 대통령중심제를 택했지만 결국 온 국민의 뜻을 다 포함시켰다는 뜻에서 강력한 정권이 아니라 이 박사 개인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정권이 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헌을 한다면 어떤 개헌이 돼야하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김=가장 중요한 점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아야 한다는 점과 대통령이 국민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큰 머슴이 돼야 한다는 점, 삼권의 엄격한 분립으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등을 들 수 있겠죠.
아까 말씀처럼 국민은 외국의 불행한 예도 알고 해서 참된 민주주의가 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정말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개헌을 해야합니다. (이때부터 화제는 민주 회복의 방법론에 해당하는 얘기로 넘어가는데 홍씨는 주로 「정치력」의 발휘를 촉구한 반면 김 총재는 대여 공격으로 나갔다.)
▲홍=재작년 말 국회에서 여야 공동으로 대 정부 건의를 채택한 일이 있는데 그런 것을 좀더 발전시켰으면 해요.
우리는 투쟁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그것은 일제시대나 좌우익 대립에서 쓴말이고, 이제 이쯤 되면 「정치」를 건설할 단계라고도 보겠는데 투쟁보다는 정치로 좀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인지.
정치라면 곧 대화로 되어야 하는데, 여든 야든 목표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고 방법만이 문제가 된다고 볼 때 「대화」와 정치로 방법 문제에 관한 이견을 극복할 수는 없을까요. 국가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또 국민의 당황과 불안을 극소화시키기 위해 국민이 뽑은 선량, 「엘리트」들이 좋은 방안을 내놓아야겠어요.
▲김=좋은 말씀입니다…. 결국 대통령이 지지자보다는 야당이나 많은 사람들의 반대 의견을 경청하는 입장에서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바른말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안보 문제만 하더라도 야당 당수의 견해가 곧 대통령의 견해와 같아야만 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홍=대통령과 야당 당수간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여야 총무나 정책 책임자끼리 얘기해 볼 수도 있지 않아요. 그러자면 정당부터 좀더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없느냐 싶어요. 신민당은 흔히 당수에 일임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그건 당수를 어디 올려놓고 흔들자는 얘긴가요.
▲김= (웃으며) 총재가 됐으면 책임지고 해야죠. 영국 노동당은 당수에게 전적으로 맡긴답니다. (계속해서 그는 통일 문제로 말머리를 돌렸다) 내가 집권하면 필요한 경우 어디서든 김일성을 만날 용의가 있고 미·일·소·중공·한국·북괴 등 6자가 얘기하는 기회도 생각해 볼만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통일을 하기 위해서도 첫째, 둘째, 세째가 모두 민주주의를 하는 것뿐입니다.
▲홍=통일은 참 어려운 문제야. 그러나 공산 독재에 대한 최대·최후의 무기는 민주 자유입니다. (이어 결론 삼아) 민도의 미급, 정치의 미숙 등 오늘의 여건에서 선량인 의원들은 역사의 먼길을 개척해 나간다는 개인적인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선은 정치가 좀더 대화의 길을 모색해야 되잖겠어요?
▲김=(웃으며) 내막을 몰라 그러시는데 여 측에 얘기할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홍=여당과 싸우는 이상의 고충이 야당 안에 있다는 사실, 정말 동감합니다. 하하.

<기록=송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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