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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문학>
해방 후 30년 동안의 우리 나라 문학이 그 나름대로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노벨」문학상의 수준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 온 것이 우리 문단의 현실이다. 그것은 비록 작품 수준에 있어서의 거리 때문만이 아니라「노벨」문학상의 여사가 설명하듯 그 상이 지나치게 대국 중심이며 어느 정도의 정치적 입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한국과 비슷하거나 보다 뒤지고 있는 나라에서「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음은 『아직 한국에서「노벨」문학상 수장작가가 나오기는 시기상조』라는 말에 대한 합리적 변명이 될 수도 있다.

<69년내 매년 추전의뢰>
그러나 「노벨」문학상 수상이 문학의 궁극적인 태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현상적인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가령 우리 문학이「노벨」상 수상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 문학발전을 위한 다른 표현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원거리에서나마 한국 문학이「노벨」문학상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69년12월「스웨덴」한림원이「펜·클럽」한국 본부에「노벨」문학상 후보자 추천 의뢰를 해온 것이 처음이었다. 그후 거의 매년에 걸쳐「스웨덴」한림원은 후보자 추천을 의뢰해 왔으나 작품 수준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외국에 소개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번역된 작품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우기「스웨덴」한림원의 추천내용은 영·불·독어 등으로 번역된 작품집을 보낼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이 아무리 우수해도 번역돼 있지 않으면 추천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번역을 전제로 하지 않고 후보작품에 간한 논의를 했을 때 부각된 작품은 이광수의『무명』, 안수길의『배문도』, 김동리의『사반의 십자가』, 황순원의『일월』등이었으며 이밖에 서정주·박두진 등의 시작품에 대한 가능성이 검토했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 대부분이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이어서 다만 논의에 그칠 수밖에 없었고 서면으로 재미작가「리처드」김의『순교자』를 추천했으나『그 작품을 한국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느냐』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번역 안돼 대상서 제외>
추천할만한 작품은 있는데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후보자 추천을 못하고 만 지난날의 상황은「상당한 발견」을 자부한 우리 문학의 심각한 문젯점을 드러낸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느냐 못하느냐는 문제는 제쳐놓고 세계 문학속에서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문학. 그것이 한국 문학인 것이었다.
문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번역에 있다. 68년「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가와바다·야스나리」의 경우 물론 그 작품 자체의 문학적 가치도 높이 평가됐지만 미국인 번역자 「에드워드·사이덴스티커」거의 완벽한 번역이 원작을 더욱 빛냈음은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케 하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장작품을 결정하는데 있어서의 객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문학이 국내에서만 『많이 발전했다』『세계수준에 손색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만 자기만족일 따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문학 작품이「노벨」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최종 후보작품으로 논의되려면 아직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필연적으로 거치지 않으면 안될 단계를 거치지도 않고 막연하게「노벨」문학상을 넘겨본다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다.
「노벨」문학상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대 번역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지만 번역사업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번역될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번역 문학가, 우리 나라의 번역문학가, 그리고 원작자의 공동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완벽한 번역 문학작품이 나올 수 있게 됐을 때, 그리하여 세계 문단에서 한국문학의 수준을 인정하게 됐을 때 우리가「노벨」문학상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노벨」문학상이 우리에게 접근해 오게 될 것이다. 물론 이렇게되기 위해서는 당국의 정책적인 배려가 필수적인 것이며 1930년대 미국정부가 보였던 이「노벨」상상 다량획득작전 따위와 같은 것도 필요할는지 모른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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