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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풍년… '74년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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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긴급조치의 선포와 해제·신민당의 당권교체·개헌공방과 원내에서의 여야충돌 등 많은 정치「이슈」가 부침한 74년-. 정국의 소용돌이가 거셌던 만큼 정치발언도 무성했다. 중대발언·문제발언·비난·공격발언·심지어 실언에 이르기까지 그 말이 미친 영향도 여러 갈래였다. 말로써 피해를 본 정치인도 없지 않았으며 말과 행동이 엉뚱해 「별명」까지 얻은 사람도 있다.

<사대주의 논쟁의 파문 커>
「1·8(개헌논의 금지)긴급조치」를 비롯해 「1·14」(경제) 「4·3」(민청련)긴급조치 등이 중대발표예고와 함께 선포됐고 개각과 야당당수의 회견도 중대발표에 들어가 긴장도를 높였다.
올해 전반기는 「중대발표」성수기였고 후반기엔 신민당 김영삼 총재가 개헌론을 들고 나오면서 충격발언이 연속됐다.
『빵도 자유도 없는 상태』 『자유의 무덤』등 거친 발언이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 의해 연발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10월1일 국군의 날 치사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환상적 낭만주의자』라면서 일부 개헌론을 맹박했고 12월에는 「역사에 기록조차 안 될 존재」들로 시대착오적이며 비생산적 요소를 문제삼았다.
「사이비 언론」이나 「사대주의」논쟁도 그 파문이 결코 자지만은 않았던 쟁점-.
『매일 신문을 보면 할말은 모두 활자화되고 있다』고한 김 총리는 한국실정을 정확하게 보도 않는 일부 외국신문을 「사이비 언론」으로 규정했던 것. 여당에서 일부 야당정치인을 사대주의자로 몰아붙이자 신민당에서는 『우리는 사대를 하려야 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다』고 되받았고 사대주의자 지목은 아직도 서로 계속되고 있다.
정치와 종교, 종교의 현실 참여도 크게 문제됐다. 김 총리는 『신을 믿는 정부는 그 권위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녹유되는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권위가 비롯되는 민주정부에 대해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곧 악』이라고 말해 신학자들과의 성서해석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다.

<"철이 들었네"로 반발 달래>
종교계의 반발이 일자『그 사람들도 철이 들 때가 오겠지』라고 받아 한동안 「철이 들었네」 「안 들었네」등의 시비가 오갔다. 이효상 공화당 의장서리는 『종교지도자들이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남이 할 일을 한다면 간판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비판. 그래서 교계는 반론을 내놓았다.
문제된 발언은 개헌논쟁에서 많이 빚어졌던 편.
특히 신민당 정일형 의원이 12월14일 국회본회의에서 「하야준비용의」 운운한 발언을 함으로써 국회문을 사실상 닫게 했다.
개헌논쟁이 본격화하면서 「개헌만이 살 길이다」는 구호가 나왔다.
야당의 개헌주장에 대해 민병권 유정회 총무는 「예수가 부활해도」 죽은 선조가 되살아 와도란 전제를 달고 『개헌이란 「개」자도 고칠 수 없다』고 했으며 어느 야당의원은 개헌극한투쟁을 반대한 것이『개헌하면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라고 말한 것으로 잘못 전해져 당내에서 말썽이 됐다.
9월 정기국회이전 오랫동안 국회가 폐회상태를 지속하자 「애보는 국회」시비도 일었다. 야당에서는 여당이 국회를 열지 않는다고 김용태 공화당 총무를 빗대놓고 『집에 가서 아기나 보라지』라고 했고 이를 받아 김 총무는 『그 사람들은 여기저기 볼 아기가 있는지 몰라도 나는 아기가 없다』고 응수.

<어용학자 시비 부산떨고>
「실언」과 「정언」사이에서 문제발언을 잘 하는 이효상 공화당 의장서리는 연초 「사꾸라」론을 일석.
기자들과 만난 이 당의장서리는 『나라가 잘 되려면 여당에는 야당「사꾸라」가, 야당에는 여당「사꾸라」가 많아야 한다』면서 시국수습을 위해 신민당의 유진산 총재를 만날 용의가 없느냐는 기자질문에 『유 총재는「사꾸라」인데 만날 필요가 있느냐』고 한데서 문제가 발단됐던 것. 뒤이어 이 당의장서리는 『공화당이 더러는 반발도 해야하는데 정부 하는 일에 따라만 가니 공화당이 인기가 없다』고 정언인지 실언인지 분간 못할 발언을 연타.
어용학자 논란도 화제가운데 하나.
개헌논의를 금지한 1·8긴급조치와 국회의원 원내발언과의 면책특권관계가 논란된 국회법사위(8월8일)에서 김명윤(신민)의원은 『긴급조치에 면책특권이 있다 없다하는 어용학자들의 쓸개없는 아첨은 국가장래에 큰 해독이 된다』고 공격했다.
이를 받아 한태연(유정)의원은 『여당이기 때문에 어용적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으나 헌법해석을 어용적으로 한일은 없다』고 방어.
김 총리는 『사계의 전문가들이 나라를 잘 꾸려나가자고 지식으로 돕고 협력하려는 자세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를 일제시대의 어용교수 같은 것으로 보고있으나 정부를 돕는 교수를 어용교수로 보는 것은 전도된 옳지 못한 자세』라고 (12월23일 평가교수단 훈시)했다.

<"할복자살해야 한다" 표현>
8·15 저격사건의 뒤처리문제로 정부·여당 안에서 이론이 분분했던 지난8월말-. 김용태 공화당 원내총무는 행사주최자인 양택식 서울시장이 사표반려 그대로 주저앉자 『후안무치』 『할복자살을 해야한다』등 원색적 표현으로 퇴진을 촉구.
8·15사건 정정 발표와 관련해서 8월28일 열린 공화당당무회의에서는 백남욱 총재고문이 「앉은뱅이 정치론」을 폈다.

<별명「워치황」 「정낙호」생겨>
『앉은뱅이가 ×을 싸놓고 비켜 앉지 못해 제 몸에 칠갑을 하듯 정부가 매사를 덮어놓고 깔고 뭉개려는 데서 병폐가 온다』는 이론.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도 없지 않다. 문공부 공보국장이던 박모씨는 공개석상에서 『요즘 신민당이 김영삼 총재를 중심으로 한 몇몇 강경파에 의해 질질 끌려가 농성이다 무어다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뒤집힐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식량사정상 7백만명은 매년 죽어야 하는데』 『김수환 추기경이 주착이 없어요』등 망언을 해서 직위해제를 당한 것이 대표적이 케이스.
말과 행동이 문제되어 구설수에 오르내린 사람도 없지 않다. 몇몇 여당간부는 이권운동을 했대서 박정희 총재로부터 경고친서를 받아 「경고친서그룹」으로 불렸고 어느 의원은 외유길에 「파우치」(외교행낭)편으로 물개가죽을 보내와 「파우치 김」이란 별명을 받았다. 의원외교에 나섰다가 고급시계를 샀다는 어느 야당의원은 「워치 황」이란 이름을 들었으나 뒤에 여당의 단독국회를 철저히 「체크」해 『주시한다』는「워치 황」으로 탈바꿈.
개헌특위구성이 논란된 국회운영위에서는 김임식 공화당 부총무가 황낙주 신민당부총무를 가리켜 호로×라고 하자 황 부총무는 이를 되받아 『너는 호로들 ×』라고 욕해 「호로들 김」이란 별명이 붙었다.
유정회 정재호의원은 12월14일 정일형(신민)의 하야운운발언으로 송호림(유정)의원 등이 뛰어들어 난장판을 이루고 있을 때 송 의원을 구출한다고 의석에서 발언대쪽으로 점프, 「정비호」란 이름을 들었으나 잘못 떨어져 오히려 송 의원 부상만 덧치게 했대서 「정낙호」로 격하.

<국정들치기단 극렬 성명도>
여야대변인의 성명전도 강경도가 높아져 점차 극렬용어가 동원되고 있는 실정.
이해원 공화당 대변인이 올해 들어 발표한 성명은 총 54건. 1월6일 정구영 전 공화당총재의 탈당을 『위선적이고 배신적 행위』라고 규탄한 성명을 내놓은 이래 1주1건씩을 발표한 셈. 그러나 지난9월 이택돈 신민당대변인이 등장하면서 빈도가 잦아져 이택돈 대변인이 연말까지 58건의 성명을 낸데 따라 이종식 유정회대변인과 함께 각각 32건의 성명을 내 평균 3일에 1건을 기록했다.
내용도 격렬해져 처음엔 여당쪽에서 『반성을 촉구한다』 가 『맹성』으로, 드디어는 『반성을 촉구할 여지가 없는 자』 『도당』으로까지 표현되었고 야당성명은 『유감』 『촉구』 에서 『거대사태』 『역사적 죄과』 『반역행위』로 극렬화했다. 최근에는 『잔꾀』 『마각』『간계』『후안무치』『망동』『비열한 작태』뿐만 아니라 『국정 들치기단』이란 말까지 튀어나왔다.
체제비판론으로 맞붙었던 지난11월20일에는 야의 성명에 여의 반박성명이, 다시 이에 대한 야의 반박성명이 나오고 이런 성명전이 되풀이되어 『재재 반박성명』을 내어 네 차례나 공방전을 폈다. <고흥길·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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