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김병걸 <문학 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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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는 제도적·조직적·권력적이며 그 외형적 파장은 물리적 역학 현상을 일으킨다. 이와는 달리 문학은 비제도적이고 권력과는 괴리적인 것이며 인간 정신의 내적 승화에 이바지한다. 이렇게 보면 문학과 정치는 서로 분리를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문학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문학은 침묵이 미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 옹호를 사명으로 하는 문학은 인간 회복의 전열에 서슴없이 투신한다.
홍성원씨의 『괴질』 (현대 문학)은 억압적인 분위기가 안개처럼 자욱이 내리 덮인 어떤 사회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사람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허용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조직의 거대한 힘이 공포의 진폭을 넓히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
어떤 사건이 멀어져도 그 비밀은 절대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된다. 낯선 사람의 동정은 하나 하나가 경계의 거미줄에 걸린다. 주민들은 누군가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말아야 하며, 깨달음은 바로 고통과 질곡을 자초하는 일이 된다.
그곳에선 소름끼치는 조작극이 수시로 벌어지는데 그것은 즉 인간의 자유로움을 제동하려는 조직의 자기 보호책인 것이다.
오인문씨의 『인간 자격 고시』 (한국 문학)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발산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비상한 상상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오씨가 짜낸 상상의 세계에서 어떤 시대의 집권자가 인간 자격 고시를 실시하리라는 풍문을 듣게 된다. 인간답지 못한 사람들이 하도 많은 세상이니 그런 반정부적 분자들의 사회적 진출을 초기부터 잘못 베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이 성사되면 주인이 슬퍼하는 일에 아랫사람도 슬퍼하게 되고, 주인이 분노하는 사건 앞에서 아랫사람도 저절로 화가 나게 되는 그야말로 동질 감응의 전파력이 형성되어, 그 결과 모두들 정상의 집권자를 향해 자기 희생을 아끼지 않는 일사불란의 이상적인 「피라미드」 사회가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감투가 대가리보다 엄청나게 커서 눈도 가리고, 코도 가리고, 귀도 가려 버렸기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간 못하는 소위 자칭 애국자들이 득실거리는 판국을 개탄하는 거센 여론에 부닥쳐 인간 자격 고시의 실행은 불가능하게 된다.
박완서씨는 『재수굿』 (문학 사상)에서 가정 교사의 눈을 통해 부유층 가정의 거짓된 삶을 폭로한다. 없는 사람이나 낮은 사람 앞에서 도도한 기품을 내뽑으면서도, 은밀히 재수굿을 차려놓고 초조와 공구에 떨며 은총을 구걸하는 권세층의 위선을 박씨는 흔쾌한 풍자의 예도로 찌른다. 부와 세의 계속적인 향유를 스스로의 실력에 의하지 않고 재수굿에 의탁하는 유약성은 곧 허망에 가득한 특수층의 내막의 반영체라 해도 좋다.
신석상씨의 『프레스·카드』 <기삼> (월간 문학)는 지방 신문의 통합을 전후한 이권의 암투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작품이 겨냥한 표적은 어떤 특정 기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층부의 어디에나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배경으로 한 권세층의 이전투구는 흡사 「브레이크」가 터진 버스처럼 광란의 저돌성을 발휘한다. 그런 풍토에서 득세할 수 있는 인간은 사리를 가리지 않고 배짱을 부리는 후안형 뿐이다.
한승원씨의 『한』 (한국 문학)은 가장 한국적인 모정의 적나라함을 나타낸다. 옥고를 겪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 자식과의 힘든 면회를 위해 푼돈 모으기에 고된 미역 장사를 해야하는 가난한 백발 노모의 심정은, 잃지 말아야 하면서도 기실 사람들이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고귀한 인간의 원질성을 우리에게 회복하여 준다. 노모의 한은 모진 운명에 시달린 한국적 정의 정수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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