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아무리 무거워도 … 지붕 보 통째로 휜 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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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심하게 휘다니…. 재질이 정상인지 검토해야겠다.”

 19일 오전 10시30분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현장. 부산외대 신입생 등 10명이 사망하고 105명이 다친 곳에 전문가 5명이 들어섰다. 대구지검의 의뢰를 받아 체육관이 제대로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조사하러 온 한국강구조학회 소속 전문가들이다. 대부분 대학 건축·토목 전공 교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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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육관 내부로 들어선 박영석(61·명지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한국강구조학회장의 첫마디는 “지붕 무게를 버티는 ‘보’들이 통째로 휘어진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었다. 박 회장은 “정상적인 보라면 눈이 웬만큼 무거워도 이렇게까지 뒤틀리기 힘들 것”이라며 “제대로 된 강철을 쓴 것인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는 지붕의 뼈대로 기둥 위에 얹히는 식으로 연결돼 있다. 무너진 체육관은 가로 7개, 세로 13개의 보와 샌드위치패널을 연결해 지붕을 만들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보는 거의 대부분 심하게 휘어 있었다.

 현장 조사에서는 또 보가 기둥에 튼튼히 연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반적으로 용접하는 부분인데 볼트와 너트로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용접하라는 설계 지시와 달리 볼트·너트를 썼을 수 있다. 추후에 반드시 설계도면과 비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실 시공도 발견됐다. 보와 샌드위치패널을 연결하는 부분 중에 구멍은 4개인데 정작 볼트와 너트로 조인 것은 2개뿐인 곳을 찾아냈다. 서울대 이철호(54·건축학과) 교수는 “지붕을 짓누르는 무게가 그대로 전달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붕괴사고와 어떤 관련이 있을지 잘 살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천장 가운데 부분이 내려앉은 체육관 안 곳곳에서는 버려진 신발과 옷가지가 눈에 띄어 붕괴 당시 다급했던 대피 상황을 말해 줬다. 한쪽에는 대형 스피커들이 나뒹굴었다. 부산외대 태국어과 학생들이 직접 그렸다고 표시된 ‘안전제일’ 포스터가 보였다. 체육관 바닥에는 지붕을 짓눌렀다 떨어져 내린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조사단은 이날 40분가량 현장을 조사하며 내부 모습과 휘어진 보 등을 일일이 촬영했다. 여기에 설계도 같은 기초자료를 더해 건물이 무너진 과정을 모의실험함으로써 붕괴 원인을 밝힐 예정이다. 사건을 맡고 있는 대구지검 민경철(45) 검사는 “이례적인 사고이기 때문에 법적 공방이 오갈 수 있다”며 “이럴 때 전문가들의 의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 조사단을 꾸렸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단에게 “수사기관은 항상 시간에 쫓긴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른 시간 안에 붕괴 원인과 체육관의 문제점을 찾아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조사단은 “빠른 파악을 위해 임시기구인 조사단을 정식위원회로 만들어 상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사단이 떠난 뒤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현장 감식을 했다. 국과수 고재모 법안전과장은 “설계가 제대로 됐는지, 시공은 충실하게 설계를 따랐는지, 건축자재는 규격에 적합한지 등을 전부 파악하는 데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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