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터뷰 전문] 낮잠 자고 여유 누리는 이상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상화는 레고 매니어다. 서울 전농동 자택 방문에 레고로 꾸며 붙여놓은 문패에 올림픽을 앞두고 직접 적어 넣은 문구가 눈길을 끈다. [배중현 기자]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을 따고 닷새가 지난 17일(한국시간) 이상화(25·서울시청)를 소치 아들레르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소품으로 갖다놓은 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쓰다듬었다. 하얀 미소가 번졌다. "곰·토끼·설표 중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는가요"라고 묻자 "이거요"라면서 곰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는 뽀로로가 되지 않을까요"라며 씩 웃었다.

때론 수다 같았고 때론 인터뷰 같았던 대화가 끝나자 이상화는 "아, 이제 낮잠 자야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빙상 여제'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여유와 한가함을 즐기고 있었다.

- 금메달 딴 이후 어떻게 지냈나.

“특별하게 한 건 없다. 대표팀 다른 선수들 경기 보면서 지냈다. 오늘 여기 와서 처음 흑해를 봤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포대 이런 데 아닌가. 그냥 좋다.”

- 밥이나 잠은.

“시합 전에는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네덜란드에서 시차 적응한다고 잠을 그나마 잤는데 여기 와서는 제대로 못 잤다. 자다가 자꾸 새벽에 깼다. 너무 일찍 깨서 4-5시간도 못 잤다. 지금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밥 먹는 거는 아직도 조절하면서 먹고 있다. 시합 끝났다고 해서 막 먹고 그런 거 없다.”

- 그 전에 좋아했던 도시하고 소치와 비교하면 어떤가.

“나는 밴쿠버 때가 제일 좋았다.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도 좋았지만 나라 자체를 좋아했다. 거기에 즐거운 추억이 많아 잊을 수 없는 데다. 소치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너무 열악해서…. 바다가 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함부로 가기는 그렇다. 너무 무섭다. 요즘에 너무 위험하니까.”

- 경기 얘기 다시 해 보다. 본인이 원하던 그림대로 됐나.

“1차 레이스는 솔직히 아니었다. 이번 시즌에서 100m가 느린 선수(브리트니 보·미국)하고 타본 게 처음이었다. 그래도 약간 같이 가줘야 상대방도 좋고 나도 좋아질 수 있는데 너무 혼자 레이스를 펼친 것 같아 아쉬웠다. 다행히 2차 레이스는 만족스럽게 탔다.”

- 긴장을 좀 했던 것 같다.

“긴장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런 엄청난 부담을 안고 가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긴장이 됐다. 특히 1차 레이스에서 러시아 친구(올가 파트쿨리나·0.15초 차이)가 잘 타서 나 스스로 ‘실수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 그래도 곧바로 냉정해지더라.

“시합장에 들어가서 레이스할 때만큼은 냉정할 수밖에 없다. 다른 선수들이 탄 기록들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다른 선수들이 잘 타기는 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페이스를 잘 유지했다.”

- 2차 레이스가 딱 끝나는 순간 어땠는가.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이 들었다. 밴쿠버 때하고 비슷한 짜릿함을 느꼈다. 우승하는 기분 만큼 그냥 짜릿했다.”

- 혹시 내가 다른 선수에게 역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봤나.

“한 번도 안 했다. 그냥 자신 있었다.”

- 레이스 끝나고 떠오른 사람은 없었나.

“끝나자마자 떠오른 사람은 없었지만 딱 정신차리고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당연히 부모님이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뒷바라지 해줬고, 그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끝나고 나서 ‘잘 했다’고 문자해 주셨다.”

- 외신 기자들이 이상화의 오빠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가정 형편도 있었지만 둘 중 한 명을 시키자는 부모님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둘 다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일단 오빠한테는 미안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지금 대학원 다니고 있다.”

- 남자 선수들과의 훈련이 화제였다.

“내 기량이 더 좋아질 수 있었던 건 남자 선수들, 선배, 오빠들 덕분이다. 속도감을 느꼈고, 같이 운동하면서 기량이 늘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남자 선수들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떨어지더라도 ‘따라만 가야지’ 하는 생각만 있었다. 그 속도감을 익히자는 마음 뿐이었다.”

- 사람들이 주는 부담감에 대한 생각은.

“사실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어도 2,3등도 정말 잘 한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금메달만 알아주고, 2,3등을 누가 알아주느냐. 이번에 쇼트트랙 선수들도 금메달 못 땄지만 잘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아직도 인정해주지 않는 게 슬픈 현실이다. 그래도 세계에서 2등하고, 3등한 건데... 예전에 세계 대회에서 2,3등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알아주지 않았다. 무조건 1등만 해야지만 알아줬다. 그런 슬픈 현실이 있다. 이번에도 내가 느낀 게 500m에서 3등한 선수가 네덜란드 선수였는데 정말 좋아하더라. 거기서는 정말 엄청난 영웅이 됐을 거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저러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에 좀 슬펐다. 그런 분위기라면 올림픽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텐데, 꼭 금메달을 따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어 나 또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한 2등·3등에게도 박수를 보내 달라”고 당부한 이상화는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에 나선 후배들을 위한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했다. 이 플래카드는 이상화와 박승희(쇼트트랙 선수)의 친언니 박승주(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함께 만들었다. [소치=뉴시스]

- 1등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나, 아니면 메달만 따도 된다는 생각이었나.

“메달만 따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미 나는 밴쿠버 때 금메달을 따지 않았나. 그래서 부담없고, 긴장 안 하고 시합에 임하려 했다. 그런데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쉽게 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이겨낼까 하며 굉장히 떨렸다.”

- 금메달을 따고나서도 식이요법을 하는 게 놀랍다. 언제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 같나.

“아마 선수 생활을 은퇴하게 될 때까지는 계속 그렇게 할 거다. 다른 선수도 그렇다. 운동을 하든 안 하든 운동선수면 무조건 식단 조절을 해야 한다. 그게 되게 본인한테 중요하다. 쉬는 기간에도 조절해야 한다. 먹는 거는 비시즌, 시즌 다 똑같다. 다만 비시즌 때는 조금 먹고 런닝 같은 유산소 운동을 더 하는 방식이고, 시즌 들어가서는 운동 하니까 좀 더 섭취해주고 운동으로 빠지는 식이다. 지금은 딱히 뭘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더 쉬고 자고 싶을 뿐이다. 무조건 먹으면 살이 찌는 거다. 그게 음식이다. 과일 먹어도 찌는 거다. 무조건 먹으면 찌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그냥 늘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게 그 전에는 안 됐지만 대학 들어간 뒤, 밴쿠버 이후로 좀 됐다. 그 전에는 계속 옆에서 ‘먹지 말라’ 하면 더 먹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 그런 게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 받아서 살이 안 빠진 경우가 더 많았다.”

- 몸무게 이야기가 나오면 어땠나.

“나는 그걸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내 몸무게가 62kg이라는 얘기를 들은 건 인터넷 통해서 본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 얘기를 해줘서 알았다. 나는 인터넷을 안 하고 살았다. 그걸 보면 너무 부담스러울 거 같아서였다. 심지어 (이)승훈이, (모)태범이 경기도 못 봤다. 그만큼 내가 떨렸다. 내 앞에 경기를 못 봤다. 그냥 소식만 듣고 마음 아파하고 속상했다.”

- 지금 댓글 보나. 온통 칭찬 일색인데.

“지금도 안 본다. (요즘 여신 소리도 듣는데) 그래도 안 본다. (힐링캠프의 성유리 옆에서도 빛난다고 하던데) 그건 그냥 하는 말인 거 같고, 솔직히 그건 아니다.”

- 살 빠져서 요즘 예쁘다는 말 많이 나온다.

“안 예쁘게 나올 때가 훨씬 많더라. 옥의 티가 많다. 사진 기자들이 여러 좋은 사진을 쓸텐데, 옛날 사진하고도 붙여서 쓰니까 마음에 안 들었다.”

- 제갈성렬 위원이 이상화가 모자를 빨리 벗는 이유에 대해 (농담으로)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라던데.

“사실 그거 아니다. 내가 이거 해명하고 싶은데, 모든 선수들이 그냥 다 그렇게 한다. 경기모를 쓰고 하는데 답답하니까. 외모 의식을 언제, 어떻게 하겠나. 나중에 따로 말씀드려야겠다.”

- 빙상복이 안 답답하나.

“만날 입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모자는 답답하다. 불편할 때가 있고 힘들다.”

- 케빈 코치하고 영어로 이야기하던데.

“나뿐 아니라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영어로 한다. 케빈 선생님은 중국에서 6년 대표팀 생활을 하던 분이다. 아시아 경험이 풍부하고 우리의 정서에 맞게 잘 대해주셨다. 따로 우리 팀의 통역이 없다보니 우리는 그냥 영어로 다 얘기했다.”

-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의 귀여운 말투도 돋보이던데.

“나하고 편한 사람들하고는 그렇게 한다. 친한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한다.”

- 패션이 남다른 거 같다.

“이 스카프? 추워서 그냥 감기 걸려서 했다. 패션 철학은 없다. 돋보이는 걸 옛날부터 좋아했다. 그냥 나한테 맞는 걸 입을 뿐이지, 그렇게 철학은 없다. 더 튀고 싶다는 생각은 옛날에 했지만 지금은 그냥 무난하게 가고 싶어 한다.”

- 만약에 이상화같은 다른 선수가 있다. 친구라면 어떤가.

“나랑 똑같은 사람? 좋죠. 마음이 잘 맞지 않겠나. 그렇게 비슷한 사람은 많다. 스케이트 타는 친구들 아니어도 일반 친구들도 많다.”

- 한국 가서는 쉬고 싶다고 했다. 미래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해봤나.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그냥 일단 한국 가서는 친구 만나고 가족하고 시간 보내고 싶을 뿐이다. 먼 미래는 그냥 좀 더 이따가…. 밴쿠버 때도 끝난 지 3일 만에 소치 어떻게 할 거냐고 하시더라. 그게 너무 싫었다. 나는 밴쿠버의 열기를 더 느끼고 싶은데, 자꾸 4년 뒤의 소치 대회를 물으시니까, 이번에도 그랬다. 나는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더 느끼고 싶을 뿐이다. 4년 뒤를 자꾸 물으니 당황스럽다. 4년은 아직까지 멀었다. 시간은 빨리 가겠지만 먼 일이다. 그 와중에 어떻게 될 지도 모를 일이고, 아직 그건 모르겠다.”

- 경기장에서 김연아와 만나서 다니던데.

“그날(15일) 내가 간다고 했는데 연아도 간대서 선수촌 식당에서 만났다.”

- 김연아는 경기가 남았는데 다른 경기를 보러 다니더라.

“나 같았으면 못 갔다. 연아는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거다. 그만큼 연아는 정신적으로 나보다 더 좋다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나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둘 다 쿨한 성격의 소유자 아닌가.

“근데 나는 진짜 못 본다. 일반 분들이 보면 비슷해보이지만 조금 성격 탓인 것 같다. 연아한테 배울 거도 많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 의식 안 하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모습, 그리고 마음 속에 여유가 있는 것도 보기 좋았다.”

- 김연아가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태릉에서는 사실 한번도 못 봤다. 서로 훈련 일정이 달라서 볼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올림픽 돼서 보는 거다. 여유가 있다. 진짜 잘할 거 같다.”

- 하지정맥, 다리 부상 등을 안고 경기를 뛰었다.

“하지정맥류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안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 생활 하면서 그게 더 커졌다. 혈액 순환이 안 돼서 다리 올리고 자라고, 치료 받으라고 병원에서 그랬다. 하지만 계속 훈련하면서 그게 허벅지까지 올라온 상태다. 그래서 심한 운동하면 정말 아프다. 그런데 하지정맥류 뿐 아니라 무릎 자체도 좋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고 수술할 생각은 없다. 물리치료로 할 생각이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원한다. 그런데 수술을 하면 감각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거 같은 생각이어서 물리치료를 하고 싶다. 한국 가서 MRI 찍고 일단 검사 더 받을 예정이다.”

- 본인의 발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별다른 생각은 사실 없었다. 주위에서는 영광스러운 발이라고 하는데 그냥 나는 발관리를 많이 했다. 여름에만 잠깐 발관리를 하고, 겨울에는 크림을 사서 바르는 식으로 관리를 했다. 한번 잘 못 받아서 발바닥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하면 어휴…”

- 다른 종목을 했다면 금메달 땄을까.

“이 운동이 아니었다면 그냥 다른 건 안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사실 많이 힘들었는데 내가 좋으니까 엄마한테 다시 하겠다고 했고 이렇게까지 왔다. (다시 태어나서 또 이런 레이스를 하고 싶나) 그건 잘 모르겠다.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기량이 좋을 거라는 건 모르겠다.”

- 본인 기록이 워낙 좋았다. 그래도 부족한 건 없었나.

“부족한 건 많다. 올림픽에 맞춰 완성체를 만들었지만 올림픽이 아닌 비시즌에는 모르겠다. 아직 배우고 있고, 부족한 건 많다.”

소치=김식·김지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