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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멈춘 대한민국 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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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1994년 10월 21일 중앙일보 1면 기사 가운데 일부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14년 2월 18일. 본지 1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대학생들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리조트 시설 지붕이 무너졌다.’ 20년이라는 시간 차가 무색할 만큼 두 기사는 닮아있다. 성수대교 붕괴 당시엔 여고생 등 32명이 추락해 숨졌다. 17일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에선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등 10명이 무너진 지붕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대형 사고와 무고한 죽음이 마치 데자뷰 현상처럼 반복되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 이후 20년이 흐르도록 대한민국의 ‘안전 시계’는 멈춰있다. 20년 전 서울시는 성수대교가 심각한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1년6개월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를 초래했다.

 이번 체육관 붕괴 사고에도 위험을 감지할 만한 경고가 있었다. 폭설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경주 지역에는 11일부터 닷새 동안 60㎝가량의 눈이 내렸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 기둥이 없는 리조트의 체육관은 수십㎝의 눈을 견디기에 취약한 상태였다. 특히 국토해양부가 정한 이 지역 건축물의 적설하중계수(0.5kN/㎡)는 전국 최저 수준이다. 이는 구조물이 ㎡당 51㎏에 해당하는 눈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뜻이다. 50㎝가량의 눈이 지붕에 쌓였다면, 이 기준을 따라 설계된 체육관은 이미 기준을 3배 초과한 하중(㎡당 150㎏)을 받았을 거라는 게 건축계의 추정이다. 실제 인근 울산에선 이 체육관과 똑같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공장 건물 5동이 눈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리조트 측은 체육관 지붕의 제설 작업도 하지 않은 채 손님을 맞았다. 행사를 주최한 총학생회 역시 안전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행사를 진행하다 참사를 당했다. 특히 학생회 측은 오리엔테이션 장소 문제로 학교 측과 갈등을 벌이다 지도교수도 없이 행사를 강행했다.

 건축 허가서에 작성된 용도와 다르게 건물을 사용한 것도 문제다. 이 체육관은 운동시설로 허가를 받았다. 2009년 6월 24일 착공해 두 달 보름 만인 9월 9일 완공됐다. 하지만 이 체육관은 비수기엔 운동시설이 아니라 학생 연수 등 단체 행사용으로 사용됐다. 사실상 집회 시설로 전용되고 있었지만 준공 이후 4년이 넘도록 안전점검은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다. 20년 전 성수대교 붕괴 당시 정부는 ‘건설재해예방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주요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은 면적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검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최근 벌어지는 안전사고는 관리주체나 사용자의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지난해 7월 해병대 캠프 익사 사고와 16일 이집트에서 성지순례 도중 테러를 당한 사고 등도 모두 안전 문제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양윤 교수는 “지난 20년간 안전에 대한 하드웨어는 업그레이드됐지만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인 정부와 업자, 시민의 안전의식은 1994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며 의식과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정강현·채승기·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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