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민 국회 농성 막전 막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신민당과 통일당 의원들은 2년 반만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였다. 여당측의 의안 강행 통과를 막기 위한 지난날의 농성에 비해 이번 농성을 그러한 목전의 움직임에 대비한 방어적 쟁취적 농성이 아니라 선언적 농성이란 점이 특색.
그렇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자유자재 일수도 있으나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너무 길 필요도 없지만 남 보기에 흉할 정도로 짧아서도 곤란하겠기 때문이다.

<김 총재 등원할 때 마음먹어>
원내외 투쟁을 병행하는 신민당으로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원내 투쟁의 마지막 방법으로 농성을 택한 것이나 정부의 중요 경제 시책 발표에 대한 보고와 질의를 위해 11일 이후 국회에 출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11일 이후 본회의 참여 당론이 결정되면 김영삼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열 계획인 시·도 지부 현판식은 이달 하순부터로 미루어질 공산.
현재 시·도 지부 사무실이 있는 곳은 광주와 대구뿐. 이 두곳부터 시작될 현판식으로 금년 개정 추진 원외 투쟁은 끝낼 계획이다.
시·도지부 현판식에는 김 총재 뿐 아니라 당 간부와 출신 의원들을 모두 모으고 당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도 병행된다.
개헌 「무드」의 지방 확산을 위한 시·도지부 현판식을 끝낸 뒤 내년 3, 4월까지 어떻게 개헌 「무드」를 이끌어 가느냐 하는 월동 대책이 신민당 개헌 운동의 문제점이다.
신민당이 마지막 원내 투쟁으로 벌이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농성은 김 총재가 무조건 등원을 결정할 때부터 이미 내심에 두었던 것.
김 총재는 등원으로의 어려운 선회를 할 때 이미 여당과 머리를 맞대고 의안을 처리하기보다는 투쟁의 장소로서 국회를 택했다는 얘기.
김 총재는 『이미 그때 여당측이 대정부 질문 기회를 주지 않을 가능성을 반으로 보았다』면서 『그 대응책을 생각해 두었다』고 말했다.
여당이 지난 1일 야당의 등원을 앞두고 일요일에 본회의를 열어 내년 예산 등 76건의 안건을 무더기로 처리한 것은 김 총재가 이 결심을 굳히는 절호의 명분이 되었다.
특히 그 직후에 열린 의원 총회에서 의원들이 대여 공격보다 김 총재 등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에 열을 올린 사실은 김 총재를 강경으로 또는 대내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대의를 위해 국회를 좀 「보이코트」하자니 모두 들어가자고 하고, 그 의견에 따라 들어가자니 또 왜 들어가느냐고 하니 이래도 반대, 저래도 반대다. 이제는 나도 결심이 섰다. 내방식 내 소신대로 당을 이끌어 가겠다.』 의원 총회 직후 김 총재는 측근에게 이러한 심정을 토로했으며 그때 이미 농성을 결정했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납치 여객기 승객의 심정>
K 정무위원은 농성 중인 대부분의 의원 심정을 『고공 4만 「피트」의 여객기에서 납치 당한 승객의 심정』에 비유. 「농성」이란 여객기에서 뛰어내리자니 「사꾸라」로 몰려 정치 생명이 위태롭고 그냥 가자니 앞날이 불안스럽기만 하다는 얘기.
김영삼 총재가 농성 계획을 설명한 4일의 당직자 회의의 분위기처럼 상당수의 의원이 농성 자체를 달가와 하지 않으면서도 마지못해 끌려가는 인상이다. 『「라디오」나 듣고 알게되니 이럴 법이 있느냐』(이민우 의원), 『의원 각자에 관한 문제인데 의원 총회에서 미리 상의를 해야 할게 아니냐』(박영록 의원)는 불평이 농성장에서 새어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오는 것.
반면 이택돈 대변인의 설명에 따르면 『총재의 기질로 보아 이제 저공 비행은 하기 어렵다』는 것.
농성 시한에 대해서도 김 총재는 며칠 더 해야지 하는 생각이나 많은 의원들 사이에선 하룻밤을 지낸 후부터 『내일이면 끝내야지』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형편. 김형일 총무가 이런 의원들의 분위기를 김 총재에게 전했으나 그는 듣기만 하고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대체로 농성에 적극적인 의원들은 황낙주 최형우 김동영 문부식 의원 등 총재 직계와 정일형 김옥선 이택돈 한영수 의원 등 10여명 정도로 손꼽히고 있다. 정일형 의원은 『의원 생활 20년에 수없이 많은 「데모」와 농성을 했지만 과거엔 그것이 모두 정치활동이었던 반면 이번만은 학생·종교인·지식인의 공동 활동에 한 팔의 힘을 보태는 일이어서 외롭지가 않다』그 심정을 밝혔다.

<이 정도 약과다 이 대변인>
그런가 하면 이중재 의원은 『정국이 혹한처럼 얼어붙기만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며 이달 중순에서 정부에서 모종 강경 조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고 했고 이 대변인은 『농성』→메모→형무소의 「코스」는 후진국 야당 정치인들이 으례 각오해야 한다는』이라며『이 정도는 약과』라고 했다.
『안보문제만 없다면 발가벗고 길거리를 뛴 들 누가 뭐라겠는가』-.
신민당의 국회 본회의장 농성을 보면서 김용태 공화당 총무가 내뱉은 말이다. 격렬한 어조로 야당 농성을 성토는 하면서도 여당권의 방어 대책은 일단은 주시만 하는 전략.
그래서 공화당과 유정회는 신민당 농성에 대해 두 대변인의 비난 성명만 냈고 야당 의원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소속의원들의 국회 출입도 억제를 지시했다. 이것은『그 이상의 묘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준규 공화당 정책위의장의 설명.
처음에는 적극 저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지난번 「데모』때 의사당 밖으로 못 나가도록 여당 의원들이 붙잡은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였다는 것.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딪치면 신민당의 전열을 결속시켜 주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왔다.
신민당 내에서 김 총재의 강경 노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여당측의 분석이며 이를 차차 양성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견해도 나와 있다.

<여, 일단은 주시 안 하는 전략>
신민당의 농성을 주시하지만 계속 여당권이 방관만은 하지 않을 대응 전략도 검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효상 공화당 의장 서리·박준규 정책위의장·길전식 사무총장이 6일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 국회대책을 보고한 것도 대야 전략과 관련이 있는 모임이다.
신민당이 10일 이후에도 국회를 외면하면 정상화 협상도 벌일 필요가 없고 정부가 내놓은 법안들을 다시 단독 처리, 방망이질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우선은 야당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비상 대권도 제도상으로 갖추어져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는 것이 어느 공화당 간부의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