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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경기|임종철<서울대 상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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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 해도 앞으로 20여일이면 끝이 난다. 그러나 일부 낙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의 불황과 또 동시에 휴전 이후 최악의 물가 상승이 겹친 경제적 고난은 74년이란 역년과 함께 종언을 고할 전망이 전혀 없다.
국민들은 희망적인 관측에 현혹됨이 없이 이것을 30년대의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닥친 본격적인 공황의 시작으로 보고 이에 대한 가장 현명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고 또 그보다도 공황과 싸워 나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이 옳다.
금년의 경기가 2·4분기 이후 급격히 붕괴한 원인은 이를 돌이켜 볼 때 대충 셋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는 외생적인 것으로 선진국의 과열 경기가 냉각되면서 긴축으로 일변하여 수출 의존적 경제 성장, 즉 수출 선도적 경기 유지를 해 왔던 한국 경제의 수출 수요를 실질적으로 감소시켰을 뿐 아니라 석유를 비롯한 자원 파동이 「인플레」를 수입치 않을 수 없게 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책 당국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경제학자들의 말과는 달리 이는 금년도 불경기의 최대의 또 단일의 요인이 결코 아니다. 금년도 경기란 단기 현상에 관한 한 그 최대 원인은 그릇된 정책에 있다. 즉 73년의 일시적 호경기에 현혹되어 시설 투자를 강요함으로써 기업으로 하여금 경기의 부심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송두리째 뺏은 것이 그 하나로 우선 지적되어야 한다. 섬유 산업의 경우가 그렇다. 또 시세가 반락될 단계에 와서 뒤늦게 원자재 수입을 권장하여 적정 재고를 훨씬 상회케 한 것도 같은 종류의 정책 「미스」다.
다음으로 과다한 재고를 적절히 처리케 하기는커녕 오히려 막대한 비축 금융을 줌으로써 한편으로 매석, 고가격 조작을 통해 물가고를 결과하여 소비 수요를 위축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측면에서의 「인플레」 조성을 일반적 금융 경색과 동시에 결과한 것을 들 수 있다. 끝으로 임금·미곡 수매가 등 요소 소득을 「인플레」이하로 억압함으로써 소비자가「인플레」와 공생할 수 있고 그 덕에 생산자도 불황에 견디어 낼 수 있는 길 마저 막아버리 것을 들어야 한다.
이 같은 정책「미스」이외에 불황을 격화시킨 국내 요인으로는 생산 및 분배의 모든 면에서 불균형을 구조적으로 조성해 온 30년간의 잘못을 들 수 있다. 산업간·계층간, 지역간의 불평등이 이처럼 심화되지 않았던들 1인당 GNP 3백76「달러」수준에서 불황은 좀더 견디기 쉬운 것이 되었을 것이다.
12월의 경기를 볼 때 이러한 불황 요인은 조금도 제거되거나 완화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양정을 비롯한 각 정책 부문에서 평지풍파만 늘고 있다. 그 결과 6일의 경제 동향 보고에서 밝혀지듯 생산·출하·건축 등 모든 경제활동이 계속 둔화되고 물가는 오히려 반등하는 가운데 재고만 늘어 경기 예고 지표는 10월에 비하여 0.3「포인트」다시 떨어지고 있다. 그뿐더러 경기 선도의 주요 요인인 수출의 선행 지표인 신용장 내도액도 계속 감소되고 정부 재정 적자와 통화량만 급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부터 엄동설한에 접어들므로 경제활동은 계절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축소되고 사설 당국만 바빠지게 되는데 구휼적 공공 투자 활동마저도 동면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적어도 내년 2월까지의 경기 일반, 그보다도 미조직·비상용의 근로자에게는 절망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좋은 꾀가 생긴다」 는 독일 속담이 있지만 세계 경제의 불황이 75년 중에도 계속된다고 어둡게 전망되는 지금 시간이 우리편일 수는 없다. 그리고 불황의 주원인이 분명 내생적인 것이므로 활황은 몰라도 공황 불식은 우리의 정책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므로 유일한 처방으로서 우리는 정책 기조의 변화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12월, 1월의 단기 대책으로서는 우리는 경기를 운운하고 싶지 않다. 경기에 앞서 고용에서 쫓겨나고 고물가에 짓눌려 생존의 길이 막연해진 사회적 심전층들이 명춘의 햇빛을 볼 수 있게끔 하는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GNP 성장률이니, 경기 지표니 하여 한은서 만들고 정부에 선전하는 공허한 숫자보다도 인간의 생존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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