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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호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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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엔」의 모든 기관은 5개의 공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프랑스」어·중국어·「러시아」어, 그리고 「스페인」어. 그러나 상용어로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통용된다. 총회나 안전보장이사회에선 「스페인」어도 상용어로 쓰인다. 국제사법재판소만은 용어의 단순화를 위해 영어와 「프랑스」어만 쓰게 되어 있다. 최근엔 「아랍」세계의 세력이 부상하면서 「아랍」어도 「유엔」의 공용어에 추가되었다.
이들 「유엔」의 공용어는 언제나 동시 통역되어 대표들의 「이어폰」으로 연결된다. 대표들의 좌석엔 「다이얼」이 설치되어 있다. 임의로 각자의 편의에 따라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통역사는 「유엔」의 공개시험에 의해 채용된 「에이스」들이다. 비록 「텍스트」는 사전에 배포된다고 .하지만 타국어의 연설을 동시에 정확히 통역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흐루시초프」전 소련 수상 같은 사람은 「텍스트」를 접어놓고 즉흥연설을 해댔었다. 그의 격앙된 어조에 맞추어 통역이 따라가자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상상조차 힘들다.
요즘 「유엔」정치위(제1위)는 한국문제 토의과정에서 「언어부조」를 빚어 실소를 자아냈다. 중공대표가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외신이 있었다. 역시 그 뒤를 따라 소련대표도 똑같은 호칭을 썼다고 화제가 되었다.
「매스컴」은 물론, 우리 외무당국도 당황한 듯 현지보고를 재촉하는 촌극도 없지 않았다. 이것은 중국어, 또는 「러시아」어를 영역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한낱 오역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말꼬리 하나에 신경을 세우고 천하의 대세까지 점쳤던 「코먼터리」가 무색해 졌다. 국제회의에서 상호의 명칭을 정식으로 호칭하는 것은 상대의 지위를 존중하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도 속칭과 통칭이 저항 없이 사용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엄연한 현실이다.
한편 소련·중공이 「대한민국」으로 호칭한 선례는 벌써부터 있었다. 1954년 한국통일문제를 다룬 「제네바」회의 때 소련대표 「몰로토프」는 우리를 가리켜 분명히 ROK(대한민국)라고 호칭했었다. 당시 중공의 주은래나 북한의 남일도 역시 「대한민국」이라고 불렀었다. 우리의 하영태 대표는 이때 북한을 「퍼피트·리짐」(괴뢰정권)이라고 지칭하는 분위기에서도 그랬다.
그 당시는 국제정치사회에서 소련이나 중공이 북괴를 우리와 대등한 지위에 올려놓는데 정신을 쏟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제는 국제정치의 「정황」이지 호칭의 흑백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호칭이야말로 지섭과 말단의 문제일 뿐이다. 중공과 소련대표가 「무어L 울 말했는지가 호칭에 앞서 더 중요할 것이다. 일희일비의 여름 일기 같은 「외교적 판단」은 역시 「촌티외교」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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