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정위의 한국 문제 토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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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문제가 「유엔」정치 위원회에서 토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엔」정위는 26일 북괴 대표의 연설을 듣고 오는 30일에 한국 대표의 연설만을 들은 뒤 실질 토의는 총회에서 「크메르」대표권 문제가 처리된 다음에 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한국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토의는 12월초가 될 것이다.
한국 문제 토의가 이처럼 일시 중단됐다가 다시 토의하게 된 것은 북괴 동조국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 「크메르」대표권 문제를 처리한 뒤 그 여세를 한국 문제 토의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한국 문제가 작년 총회 때처럼 막후 협상으로 타협이 이루어질 것인지 또는 끝내 표 대결로 승부를 가리게 될 것인지는 아직도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문제의 토의도 비생산적인 냉전적 응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화와 화해를 통해 원만히 처리되기를 바라는 소리가 「유엔」내외의 한결같은 여론인 것이다.
더군다나 작금의 국제기류는 한국 문제의 이번 「유엔」토의와 때를 같이해서 미·소 정상회담 또는 미·중공 회담이 열려, 서로의 관계 개선을 다짐하고 있으므로 구태여 한국 문제 때문에 이들 강대국들이 대결할 개연성은 거의 없다. 이점 작년 총회 때처럼 타협의 가능성을 올해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며, 이것은 한국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끝내 유감인 것은 이같은 국제 조류와는 아랑곳없이 북괴가 계속 이 「유엔」을 무대로 한 외교상의 대결을 책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괴 동조국들은 이번 총회에 내놓은 『「유엔」기치 아래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군 철수』라는 결의안을 관철시키기에 급급하고 있다.
26일에 있었던 북괴 대표의 연설은 10월6일 북괴의 대 「유엔」비망록과 11월15일 북괴의 이른바 「조국통일 민주주의 전선 중앙위 제63차 확대회의」에서 행한 허담의 연설과 똑같은 것이다. 북괴는 그 이전 남북 조절위원회의 때부터 내세웠던 주한 「유엔」군 철수를 목표로 한 「쌍무적 군사회담」과 「군사문제 우선 해결」주장을 「유엔」에서도 상투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괴 측 「유엔」대표 이종목은 『남북 합동 군사위원회 이외의 어떤 다른 기관이 필요하다면 현재의 중립국 감시위원단이 남북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 필요한 새로운 기능을 갖고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하여 한국사태에 생소한 「유엔」대표들을 현혹시키려는 기만선전을 일삼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북괴의 이같은 기만전술은 휴전협정의 일방 당사자가 「유엔」군사이며 「유엔」군사의 장래문제는 관련된 당사자들의 협의 하에서만 결정되어야 한다는 서방측 결의안에 응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북괴가 진정으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를 바라고 휴전협정에 대체되는 평화협정 체결을 바란다면 현 휴전협정부터 준수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남 도발을 중지하고 군사정전위의 기능과 중립국 감시위원단의 기능을 정상화하도록 해야 한다.
비무장 지대에서의 도발사건에 대한 공동 감시조의 조사마저 거부하고 있는 북괴가 중립국 감시단에 새 기능을 부여하자고 운위하고 있는 것부터가 표리부동의 가소로운 기만술책이다.
신뢰 없는 협정은 휴지나 마찬가지다. 남북간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먼저 오해의 해소와 신뢰의 회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대화를 정상화하는 길밖에 없다.
따라서 「유엔」은 한국 문제를 토의함에 있어 우선 남북대화를 궤도에 올리도록 그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금차 총회에서는 작년 『제28차 총회의 한국문제 결의사항의 전면 실천과 한반도 평화 및 안보유지의 긴급한 필요』를 강조한 서방측 결의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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