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스마」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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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의 전중 수상은 결국 26일 자민당 총재직과 수상직을 정식으로 내놓았다.
발단은 한 잡지가 전중 수상의 치당 과정을 추적해 낸데 있었다. 국민학교밖에 못나 온 그가 적수공권으로 수상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정치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신통한 사업체도 없이 기하급수적으로 치부한 것도 드문 일이었다.
의혹이 안 따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역대 수상자 중에서 「의혹」이 없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새삼 전중 수상을 불명예스러운 퇴진으로 몰고 간 일본 언론의 힘이 느껴진다. 그가 자제했던 TV회견을 기자들이 거절했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왜 집권 2년이 지난 다음에야 치부에 얽힌 의혹이 표면화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닉슨」의 사임극이 자극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양자가 퇴진하기까지의 「패턴」은 비슷하다. 그러나 정말 비슷한 것은 겉뿐이다.
「워터게이트」사건은 「닉슨」의 사임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아직도 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포드」대통령도 「닉슨」에게 대사령을 내렸다 하여 의회의 심문을 받아야만 했었다.
전중 수상의 경우는 다르다. 모든 의혹은 그의 사임과 함께 백지화되는 모양이다.
전중 자신은 사임성명 속에서 치부에 얽힌 의혹을 『오해』라고 말했다. 이어 『진실을 해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얻을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어느 일각에서도 그의 부정을 법적으로 가려낼 뜻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 사회의 특수한 생리가 엿보이는 것도 같다.
어느 사가는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창호지로 풀이한 적이 있다. 일본식 가옥의 방은 모두 「후스마」(간막이)로 되어 있다. 「후스마」는 손가락 하나로도 뚫린다. 어린이도 열 수 있다. 방안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면서도 「후스마」는 간막이의 역할을 한다. 그것을 간막이로서 존중한다는 암암리의 약간이 전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정치에도 이런 「후스마」가 있다. 전후의 일본 저상 중에 「의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의혹을 범죄와 속결시키고는 감히 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좌등 전수상도 여러 해 동안이나 『검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그래도 그는 까딱도 없었다. 그가 물러난 다음에는 『검은 안개』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과는 다르다.
그만큼 일본 사람들을 너그러운 탓일까. 아닐 것이다. 정치에 관한 선악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아니면 정치의 윤리가 그만큼 해이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중의 퇴진이 앞으로의 일본 정치를 한결 투명하게 만들어 줄 계기가 된다고는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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