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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잠자다 놀라 온가족 껴안고 벌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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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먼 곳에서 치는 천둥소리 같았습니다. 걸프전 공습 때에 비하면 훨씬 작게 들렸어요. 그때 볼륨이 10이었다면 한 7쯤 될까요. "

바그다드 시민 아흐메드 알 오베이디(30.한국무역관 근무.사진)는 20일 오전 5시30분쯤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에 잠을 깼다. 전날 밤 늦은 저녁을 먹고 2층의 침실에 누운 지 5시간 만이었다. 그에게 이 소리는 아주 익숙한 소리였다. 미군이 공습해 올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라크군의 경고음이었다.

그는 침실을 빠져나와 아래층 복도로 뛰어내려갔다. 아버지.어머니와 의사인 형 부부, 그리고 어린 조카들까지 가족 8명 전부가 서로 꼭 껴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쿵!" 천둥소리 비슷한 폭격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1991년 걸프전과 98년 공습 때 여러번 들었던 그 소리였지만 크기는 훨씬 작았다.

"시 외곽의 무기고를 때리나 보다." 형이 나지막이 말했다. 가족들은 겁먹은 눈매로 고개만 끄덕였다. 아홉살과 다섯살배기 조카 무스타파와 사라가 할머니 품을 거세게 파고들었다. 둘 다 입술을 꼭 다물고 울음을 참느라 애쓰는 눈치였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사이렌이 다시 길게 울렸다. 공습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가족들은 얼른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아흐메드는 거실로 가 약혼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달 전 혼인신고를 마친 두 사람은 며칠 뒤면 결혼식을 올릴 참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했다.

한숨 돌린 것도 잠시, 1시간 만인 오전 7시30분쯤 또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9명은 또다시 복도에 모여 웅크렸다. 아까와 비슷한 폭격음이 들려왔지만 25분 만에 그쳤다. 다시 사이렌이 울리자 가족들은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4개 채널 모두 정상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국영방송을 틀자 이 시각이면 방송되는 정규 쇼 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30여분 만에 또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가족들은 또다시 복도로 몰려갔다. 그러나 폭격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흐메드가 다시 거실로 들어섰을 때 기자는 그에게 여덟번째 전화를 걸고 있었다. 가까스로 연결된 그에게 "괜찮은가?"부터 묻자 "다친 사람 하나 없고 전기.수도.전화 모두 정상이다. 그러나 거리에는 총 든 군인들 말고는 인적이 끊겼다"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걸프전 때는 공습이 밤에만 실시돼 낮에는 시민들이 거리를 활보했다는데 이번에도 그런 상황인가?"라고 묻자 그는 "이번엔 미군이 다리건 집이건 닥치는 대로 폭격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미군 폭탄도 폭탄이지만 이라크군 대공포에서 발사된 포탄 탄피에 맞아 죽을 위험도 크다. 이 때문에 시민 대부분은 종일 집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시가 48시간 시한이 지나자마자 공습해올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오늘 새벽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라크인들은 전쟁에 익숙하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조만간 바그다드 시내가 불바다가 될 게 뻔한데 두렵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그는 "두려워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전쟁 기간 내내 가족들과 복도에서 폭격을 피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복도는 양쪽에 방이 여러개 있어 일단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식량.기름을 미리 재어놓아 반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약혼녀가 걱정된다. 예식을 며칠만 서둘렀어도… 너무나 후회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통화 말미에 그는 "내일도 꼭 전화해달라. 바깥에서 걱정해줘 무척 고맙다"고 당부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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