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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유전 불질러 美진격 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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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속도전 위주의 미국의 공격 전략에 맞선 이라크의 항전 전략은 전쟁을 최대한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유프라테스 강물 범람 같은 수공(水攻)과 유정(油井) 방화 등 화공(火攻) 같은 원시적 전법으로 미군의 발목을 잡는 한편 미군의 잔혹상을 TV를 통해 부각시켜 전세계 반전 여론을 조성한다는 전략이다. 한마디로 이번 전쟁을 '부시의 월남전'으로 만드는 것이 후세인의 전략이다.

군사 분석가들은 이라크가 다음과 같은 4단계 방어 시나리오를 통해 전쟁을 지구전(持久戰)으로 끌고 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는 1단계 개전 초기에는 병력을 지하 참호에 은폐.엄폐시켜 놓고 공습에 버틴다.

또 미사일.탱크 같은 핵심 전력과 장비는 민간인 거주지에 분산배치, 공습을 피한다. 또 무선통신을 중단하고 지하에 매설된 유선 통신망을 통해 전.후방 간에 지휘체계를 점검, 유지한다. 2단계는 이라크가 수세에서 벗어나 미사일 등으로 이스라엘과 후방 미군기지를 공격하는 것이다.

만일 이라크가 스커드 미사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공격할 경우 이번 전쟁은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아니라 '아랍 대(對)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간의 대결로 그 정치적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 또 미군이 이라크 본토 공격에 나선 사이 허를 찔러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된 후방 미군기지를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3단계는 유프라테스강을 범람시켜 미군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미군이 바그다드에 진격하려면 유프라테스강을 건너야만 한다. 만일 미군의 도강(渡江)시점에 맞춰 이라크군이 교량을 폭파하고 유프라테스강을 범람시킬 경우 미군의 진격속도는 자연 지체될 수밖에 없다.

4단계는 최후 보루인 바그다드를 지키기 위해 바그다드를 '이라크판 스탈린그라드'로 만드는 것이다. 중동 전문가인 케네스 폴락 (미 브루킹스 연구소)연구원은 "뉴욕시의 1.5배 크기에 이르는 바그다드에서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전쟁은 장기화하고 민간인의 인명피해는 크게 늘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경고했다.

스탈린그라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독일군의 격전으로 양측에서 무려 1백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후세인이 미군의 바그다드 입성을 막기 위해 주민들을 동원해 파놓은 이 도시 주변의 참호에 기름을 쏟아붓고 불을 지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바그다드는 거대한 '불의 방패'에 휩싸여 미군의 진격을 어렵게 만든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후세인이 이판사판식으로 미군에 독가스 공격을 가하거나 1천5백여개의 유정에 불을 지를 수도 있다.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군은 쿠웨이트 유정을 방화한 전례가 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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