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49)약도 병이 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재생 불능성 빈혈이란 병이 있다. 백혈병보다 좀 많은 편이고 골수에서 우리 몸에 필요한 각종 혈구를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세균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 주는 백혈구가 부족해서 온 몸에 세균이 감염을 일으켜 생명을 잃기 쉬웠다. 그러나 이토록 무서운 재생 불능성 빈혈일지라도 우수한 항생제의 개발로 차차 치료성적이 좋아져서 현재는 약 과반수가 5년 이상씩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약의 남·오용으로 재생 불능성 빈혈이 초래되는 수가 흔하다. 지나치게 약을 과신하는 탓도 있겠지만 의사의 처방과 지시 없이 멋대로 약을 복용하는 우리 나라 풍조가 더 문제된다.
사회가 복잡하면 전문가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 전문 분야에 관한 일은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안전한데 우리 나라는 아직 그런 것 같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자궁 주위염이 있다는 어느 부인은 「마이신」을 먹으면 된다는 주위사람(비전문가)의 권고로 약방에 들러 스스로 싼 「마이신」을 구입하여 3개월이나 복용했다. 3개월 후 비출혈이 심하여 병원에 들러 본 즉 항생제의 부작용에 의한 재생 불능성 빈혈임이 밝혀졌다.
이 경우는 항생제의 선택·복용량·복용기간에 대한 의사의 지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성 빈혈이 있는 환자에게 몇 가지 약을 적어 주고 이중에 어느 한가지를 복용하라고 지시하였더니, 처방한 약은 먹지 않고 철 결핍성 빈혈 치료제를 한달 간 복용하고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고 병원을 찾아 오히려 의사에게 투덜대는 환자들이 있다.
그저 약국에서 빈혈 치료제라고 해서 사 먹었는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치료 안되는게 당연하다.
빈혈이라고 해서 막연히 빈혈 치료제를 복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악성 빈혈에는 「비타민」B B12를 먹어야 하고 철 결핍성 빈혈에는 철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과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이문호(서울대 의대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