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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추방 외면한 기아추방회의|백30개국의 매머드 세계식량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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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2면

「유엔」이 주최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대부분 그랬듯이「로마」식량회의도 기아추방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없이 입씨름만으로 끝났다.
전세계 1백30여개 국에서 1천여명이 참석, 12일간을 계속한 이「매머드」회의는 회의장 밖에서 굶어죽어 가고 있는 5억 인구를 외면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산유국과 선진공업국, 자유진영과 공산권이 각각 자기입장만 주장함으로써 요란했던 개막과는 대조적으로 개막 때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1백여개 국이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버츠」미 농무장관)일지도 모른다.
회의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각국대표의 발언은 회의의제와는 관계없이 점차 정치적인 색채가 짙어졌으며 따라서 많은 대표들은 아예 회의가 끝나기 전에 귀국해버렸다.
「로마」식량회의가 이처럼 별 무성과로 끝난 것은 회의에 임한 각국과 각「그룹」간의 『식량위기』에 대한 감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아사해결을 위한 비상식량원조, 식량증산을 위한 농업개발원조 등 개발도상국들의 절실한 요청에 대해 미국은『국내「인플레」억제』등을 이유로 즉각적인 지원을 거부했다.
소련·중공 등 공산권은 미국의 잉여 산업물 수출정책이 개발도상국의 식량증산을 저해시켰고 나아가 오늘날의 식량위기를 조성시켰다고 정치적 발언만 계속했다.
산유국은 최근의 세계적 불황·「인플레」등은 석유 때문이 아니라 공산품가격폭등 때문이며 미국의 식량무기화정책 포기만이 식량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칼을 쥐고있는』이들의 상이한 기본입장 때문에 구체적인 주 의제 토의는 공전만 되풀이했다.
이번 식량회의의 가장 중요한「이슈」는 ①기아지역에 대한 식량원조와②개발도상국의 식량증산을 위한 농업개발기금설치문제.
세계 기아지역을 위한 식량원조규모는 총1천2백만t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선진각국은 일반적인 식량재고의 확충과 비축제도의 필요성만을 되풀이 강조했을 뿐 정작 누가 얼마를 부담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각국이 발뺌만 했다.
주요식량생산국들이 국제적인 수요를 위해 자국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인도대륙을 비롯, 아아 지역의 굶주림에 허덕이는 약30개국 주민들을 도울 특별식량원조 1백만t제공마저『국내 경제안정』을 이유로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개발도상국의 식량증산을 위한 농업개발기금설치문제는 회의초반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어 성공할 듯이 보였다. 미국·호주·서독·「이란」·「뉴질랜드」·「노르웨이」·「스웨덴」·「헝가리」·「캐나다」·「오스트리아」·「벨기에」등 11개국은 기조연설을 통해 각기 일부를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과 소련·중공 등 공산대국 등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적극적이었으며 이들 11개국이 약속한 출연금액만도 양곡1백33만t 이외 14억6천만「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기금운영 주도국을 둘러싸고 서방선진국과 산유국이 정면 대립함으로써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서방 선진국 측은 FAO 등 기존기구를 이용하자는 주장인데 반해 산유국은 새 기구 WFA를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로마」식량회의는「방글라데시」농업상이 굶주림에 죽어 가는 인간의 참상을 절규하고있는 그 시간에 대부분의 대표들은「칵테일·파티」장에 몰려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듯이 결국 알맹이 없는 원칙선언과 구속력 없는 결의안 채택만을 남기고 끝났다. <김두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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