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버스 안내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축한지 한달 반밖에 되지 않은 단층「슬래브」건물에서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부엌 쪽에는 김장배추를 씻는 소녀들이 7, 8명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 같은 표정은 눈에 띄지 않는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교양교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온돌방에는 5, 6명의 소녀들이 눕거나 앉아 뜨개질을 하며 휴무일을 보내고 있다.
성수동 2가의 H교통「버스」안내원의 기숙사인 이「슬래브」건물은 서울시로부터 서울시내 1백1개「버스」회사 중 근로환경이 A라고 평점 받은 회사의 것이다. 8개의 온돌방에는 평균 12∼13명의 안내원들이 기거하며 방은 훈기가 감돌고 개놓은 이부자리는 깨끗한 편. 2일 근무 1일 휴무제인 이 안내원들은 일당 1천6백원과 이 기숙사 시설에 큰불만은 없다고 했다.
10여년 전부터 저임금·너무 많은 근로시간·비위생적이고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기숙사 등의 근로환경으로 인권문제와 연관시켜 주목을 끌어온「버스」안내원이라는 직업은 최근1∼2년 전부터 별로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고 있다. 여러 차례의 사회고발에 따라 노동청·서울시를 비롯한 각 행정기구로부터 감독을 받기에 이르러 기숙사 시설도 앞의 예처럼 상당히 보완됐고 전국적으로 안내원 기본임금도 월1만3천8백원 선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16세부터 22∼23세까지 평균연령이 17.3세인「버스」안내원들의 수는 전국 약2만4천명, 서울 약1만70명이다.
56.7%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단가출, 1주일∼열흘간「버스」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일자리를 얻은 이들은 50.1%가 월급을 타 가정을 돕고 있다. 82.3%가 타인을 만났을 때 직업을 밝히기를 꺼리고 이직율도 그 어느 직업보다 높다. 직업에 대한 긍지도 없고 20세가 넘으면 이「중노동」을 감당할 체력도 달리고 결혼도 해야되기 때문이다. 남가좌동∼중곡동 노선의 좌석「버스」안내원 임미자양은『다행히 괜찮은 회사에 취업, 1일 근무·1일 휴무제로 한달에 손에 쥐어지는 돈이 약2만원이다. 기숙사 시설 등에도 큰불만은 없지만 l, 2년만 계속하고 그만 둘 생각이다. 오래 종사하면 장래에도 좋지 않다는 충고를 듣는다. 또 일하는 날은 새벽 5시에서 밤11시30분까지 계속 차를 타 힘겹다고 말했다.
서울의 경우 안내원들의 기숙사 시설은 A, B, C로 등급이 매겨져 검사 받기 때문에 안내원근로조건은 최근 1, 2년간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필원씨(전국자동차노조부녀부장)는 여차장 인권강조기간(10월15일∼12월15일)을 맞아 근본적인 근로조건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숙사시설이 보완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근로시간이 임금 등의 문제보다 지엽적인 문제이며 또 서울에만 보완이 이루어졌을 뿐 지방은 팽개쳐져 있다는 것이다.
전국 자동차노조의 7월 현재 표본조사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침구가 부족한 업체가 50%며, 일만큼 기숙사시설 보완자체도 요원하다. 세면시선을 갖추지 않은 업체가 아직 60%이고 세면시설을 갖춘 회사는 60%가 물이 부족하다. 또 기숙사 시설문제에만 행정력이 동원될 뿐「버스」안내원이 평균 3천여원을 내는 식사문제에는 관심이 가 닿지 않고 있으며 몸수색을 하는 업체가 55%, 계수원을 두는 업체가 30%,계수기를 설치한 업체가 15%로 「버스」안내원에 대한 감시는 아직도 대단하다. 서울 시내 입석「버스」조합 최정민씨의 이야기처럼 안내원의 이직율은 연령·직업관 등에서 보다도 부정관계에서 빚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 부정이 많기 때문에 인권유린을 무릅쓰고 검신이나 계수기 설치 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회사측의 말. 67년 전면 회수권 사용 제도가 시도되었다 몇 가지 부작용으로 폐지된 적이 있지만 안내원이 현금을 취급해 부정이 빚어지는 이상 회수권 사용 문제는 다시 검토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한 안내원은『밥 먹을 시간도 없는 2∼3분간의 빠듯한 배차간격 등은 이제 어느 정도 시정되고 기숙사도 방도 따뜻해졌지만 피곤과 때로는 술 취한 승객과의 씨름, 장래의 걱정 등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불친절한 태도가 나온다』고 말하며 그러나 『현재 한달에 1만6천원씩 붓고 있는 20만원짜리 적금이 끝나면 무엇인가 다른 기술을 배울 희망과 때로는「차장도 앉으라」는 승객들의 친절에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박금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