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클럽」이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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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왕「코너」대 화재현장을 샅샅이 비쳐준 TV화면을 통해 볼 수 있던 처참한 그 모습들은 지금도 우리의 망막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거니와 그 중에도 특히 그날 밤새워 가면서 광란의「고고 춤」을 추다가 한데 엉켜, 남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숯 더미 시체로 화해버린 10대 젊은이들의 모습은 희생자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케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참사가 벌어졌던 바로 그 다음날에도 서울시내 27개「고고·클럽」등에서는 심지어 대낮부터 광란의 춤바람이 멈출 줄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매우 괘씸한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론 도대체「고고」춤이 뭐길래 이처럼 뭇 젊은이들을 미쳐 날뛰게 하는지 새삼 깊이 생각하는 바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숨막힐 듯한 중압감을 주는 단조롭고 규격화된 도시생활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은 일종의 생의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모든 전통적 가치가 근본적으로 뒤틀리고 있는 전환기 사회에 있어, 새로 등장한 젊은 세대들의 단절감·소외감등이 저 「히피」족의 발호현상에서 보듯이 전세계적으로 큰 사회문제를 일으켜 왔음은 병든 우리시대의 공통된 비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젊은이들이 자신들만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고, 자유분방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찾아 일종의 탈사회적 행동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뜻에서「고고·클럽」과 같은「익스트래비전스」(광난)의 장소도그 존재이유를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 같은 장소가 주로 탐욕스런 상업주의적인 동기에 의해 사회악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데 있다. 규정을 어기고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이 만큼 어둡게 만들어놓은「밀실」적 분위기에서 미성년자들에게까지 술을 팔고, 심지어 환각제 따위를 제공하는 행위 때문에 이「고고·클럽」은 반도덕적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며 청소년들은 바로 그 같은 반도덕성·금단성 때문에 더욱 커다란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할 것이다.
12일 서울시 당국은 퇴폐적인 유흥업소를 철저히 단속하라는 김 총리의 지사에 따라 규정이하로 어두운 조명을 했거나 밀실, 칸막이 등을 만들어 이른바 특별「서비스」를 제공해 왔던. 42개 유흥접객업소를 적발, 각각 3일내지 1개월간의 영업정지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물론 잘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 같은 간헐적 행정조치로써 서울을 비롯한 전국도처의 밤거리에 만연된 퇴폐풍조를 말끔히 불식해 버릴 수 있다고 낙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굳이 이 같은 장소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방감을 맛볼 수 있고 그 젊음을 다양한 형태로 마음껏 불태울 수 있는 환경을 따로 마련해주는 것이요, 또 설사 이 같은 장소에 출입하는 경우에도 부모나 연장자의 따뜻한 보살핌아래 지나친 탈선이 없도록 스스로 자제심을 발휘하도록 계도하는 대책이 중요한 것이다.
기성인들은 청소년들이 가정 이외의 장소에서 탈선 집단행동으로 흐르거나 기성세대들의 성「모럴」을 비웃듯 하는 행태에 젖게되는 동기는 이를 충분히 이해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정과 소속사회에 있어서의 애정관계의 결함에서 생기는 것이며 일단 이 같은 장치가 있는 환경 하에서 자라난 오늘의 젊은이들은 정신적으로 일종의 가출소년과 다름없는 상태에 빠져 그에게 있어서는 전통적인 가치규범 같은 것은 벌써 아무런 구속력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껏 해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하며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할 수 있는 제3공간을 제공하는데 가정이나 학교 또는 직장 등이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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