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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프롤로그|해외의 한국인 모두 80만-70년 현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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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국을 떠나 이역에 가서 산다는 것은 하나의 도피일수도 있고 새로운 출발일 수도 있는 행위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든 살을 깎아 내리는 고행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이방에서 새로운 자기세계를 개척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하나같이 입지 부의 주인공들이 아닐 수 없으며 그들의 생애는 개척자로서의 인문승리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
더우기 우리의 이민 사는 피압박 민족의 쓰라린 체험으로 점철된 민족수난기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에 수반되는 고통은 어떤 민족보다도 큰 것이었으며 따라서 고난을 딛고 일어선 승리감 또한 그 만큼 큰 것이다.
1902년 핫바지차림에 상투를 튼 1백21명이 화륜선을 타고 「하와이」와「멕시코」의 사탕수수밭을 향해 인천항을 떠난 것이 첫 대규모 이민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국운이 기울면서 정든 고국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낯선 이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유민의 역사는 이보다도 훨씬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일합방이란 비극을 전후해서 유민의 규모는 훨씬 커져 수십만 명의 농민들이 망국의 한을 안고 만주·연해주 등 대륙으로 쫓겨갔다. 일제치하에서 망명길에 올랐거나 징병·징용 등으로 고국을 떠난 사람들을 합치면 해방되던 45년 당시 전국 인구의 6분의1이나 되는 4백만 명이 해외동포였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광복을 맞아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계속 남의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있는 사람의 수 또한 적지 않다.
이들의 후예들과 해방 후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이민 길에 오른 사람들, 그리고 민족의 비극 6·25로 인해 국제결혼을 했거나 해외입양형식으로 조국을 뗘난 사람들 등 74년 현재 해외교민은 80만 명을 헤아리고 있다.
지난 62년 해외이민법의 제정으로 본격화하기 시작한 이민 「붐」을 타고 74년6월까지 모두 14만8천 여명의 새로운 해외코리언」이 생겼다. 지역별로는 북미지역이 가장 많으며(83%) 그 다음 남미(산%), 구주(4%), 기타국가(3%)의 순이다. 또 이민을 형태별로 보면 초청이민이 60%로 가장 많고 국제결혼(22%), 국제입양(15%), 계약이민(3%)의 비율을 이루고 있다.
조국을 떠난 목적과 동기야 제각기 다르겠지만 해외동포들은 다같이 남의 나라에서 소수이민족이 감수해야 하는 인종적인 편견과 사회적 제조건의 「핸디캡」속에서 자기생활의 발전적인 변화를 위해 모진 고난과 싸워야했다.「신세계」에서 이들이 가졌던 유일한 자본은 노동력과 재능밖에 없었다고 이들에게 「오늘」이 있기까지는 이민족의 개척 사에 으례 따르는 명암이 반영되었다. 허황된 가치관이나 불운, 혹은 환경이 주는 한계성으로 인해 끝내 소외자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정체 속을 헤매는 딱한 교포들도 있다. 「사할린」교포, 만주와「블라디보스토크」등지에 사는 교포들은 거의 조국과의 소통이 끊긴 채 몇 10년 동안 각고의, 나날을 살고있다.
우리 이민정책의 미숙과 이민희망자의 판단착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신천지에 대한 허망한 꿈만을 안고 갔다가 형언키 어려운 시련을 겪었던 일도 허다했다.
좋지 못한 일로 물의를 빚은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개중에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 거부가 되기도 하고 학자·예술인·정치인 등으로 이름을 떨쳐 감동적인 성공담을 남긴 입지전적인 인물도 적지 않다. 또「입지」까지는 못 갔다해도 기행으로 세인의 이목을 끌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제2의 유대인」으로 불릴 만큼 악착같은 생활력과 타고난 재질로 우리에게 낭보를 안겨준 동포들을 우리는 수 없이 기억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가난한 이국생활을 하면서도 조국독립을 위해 몸바친 이재명·장인환·전명운 의사 등 초기「하와이」교포들의 눈물겨운 애국심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만도 고국에 잘 알려진 지명인사들 말고도 각기 소수민족의 굴레를 벗어나 세계곳곳에서 놀랄만한 업적이나 일화를 남긴 코리언」은 수없이 찾아낼 수 있다.
연간 매상고 2천만 「달러」를 상회하는 화장품회사를 경영하면서 미국의회에 많은 친구들을 갖고있는 재미실업인 김한조 씨나 단돈 50「달러」를 쥐고, 「파라과이」땅에 건너와 10년만에 백만장자로 성장한 김인배 씨는 대표적인 입지 「케이스」
또 열사의 전장인 중동에서 구호단체를 이끌고 박애의 나날을 살고있는 이윤구 목사는 한국인의 봉사정신을 중동 땅에 심는데 다함없는 공로를 세웠으며 반공포로출신으로 인도에 흘러 들어가 각고 끝에 무역업에 성공한 진기봉 씨의 고생담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들의 성공은 이제 우리의 국력으로 흡수될 만큼 열매를 맺기도 해 이들의 숨은 노력과 성공과 실패에서 얻은 교훈들을 정리, 소개하는 것은 앞으로 계속될 우리국력의 해외신장 율을 위해서도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인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는「세계의 한국인」으로 그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고의 과거를 딛고 「승리」를 얻은 코리언」들의 입지「드라머」를 그 현장을 찾아 옮기기로 한다.<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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