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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선원의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짐」은 바다를 그리는 소년의 꿈을 버릴 수가 없어 결국 어느 노후선의 1등 항해사가 된다.
어느 날 배가 침수하자 선장을 비롯한 온 선원들은 성급히 배를 버리고「보트」로 도망친다.
그러나 뜻 밖에도 배는 가라앉지 않는다. 나중에 배는 외국군함에 의해 발견되고 선원들은 해사재판을 받는다. 다른 선원들은 모두 숨었지만「짐」만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법정에 나타나 선원자격박탈의 판결을 받는다.
영국의 작가「조지프·콘래드」의 장편『로드·짐』의 얘기다. 여기까지는 꼭 최근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남해 251호 사건과도 같다.
「짐」은 부끄러운 과거를 잊기 위해「말레이」의 오지에 은둔, 토 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지닌 성실한 일꾼이 된다. 『로드·짐』이란『「짐」어른』이라고 토 민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존칭이다.
「짐」이 평생을 이렇게 산 것은 스스로 배를 버리는 행위를 큰 수치로 여기는 영국선원들의 전통적 긍지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바다와 싸우면서도 바다를 다시없이 사랑하고 바다와 함께 꿈을 키워나가려는 마음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콘래드」는 바다를『영원의 심연』이라 표현했다.『바다를 타러나가는 사람들』속에서「싱그」도 바다를 비 정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러면서도 바다는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불굴의 투지를 키워주는 터전이기도 한 것이다. 뭇 사람들이 바다에 마음이 끌리고,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야릇한 매력을 느끼는 것도 이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짐」과 우리네 보통 원양선원들과 다르다. 그들은 바다에 대한 어떤 낭만적인 꿈 때문에만 배를 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에 대한 자랑도 클 수가 없다.
그저 고달플 뿐이다.『이곳 선원들의 생활실태는 노예와 다름없이 비참합니다…. 구타와 「테러」가 공공연히 행해지는 것은 물론… 소금 국에 밥을 먹을 정도며 한달 노임은 1만8천원 밖에 안 됩니다….』『하선 하려해도 하선도 시키지 않으며 심지어는 죽은 시체를 냉동해서 싣고 다니는 배도 있습니다….』
어제 본보에 실린 어느 원양선원의 편지다. 이와 비슷한 얘기는 18세기의 노예선 속에서 흔히 있었다. 그러나 이런 처참한 광경은 19세기말「짐」이 타고 있던 뱃속에서조차 없었다.
물론 선원생활이란 언제나 고달픈 것이다. 1년씩이나 가족과 떨어진 채 망막한 대해 위에서 고독을 달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불만도 터지기 쉬울 것이다.
남해 251호에 얽힌 수수깨끼는 생존자들이 발견되기 전까지에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무엇이 그들에게서 배에 대한 애착을 앗아 버렸는지는 분명하다. 또한 그들이 바다에서나 마찬가지로 육상에서도 버림받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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