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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와 강철이 만나면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매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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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16면

‘사자 의자(Chaise Lion)’. 상감 세공 기법으로 가죽처럼 보이는 호피 무늬를 만들고, 강철과 펜디의 여우털을 조합시켰다.
강철로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마리아 퍼게이.

‘철의 여인’ 하면 흔히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떠올리지만, 예술계에도 ‘철의 여인’이 있다. 디자이너 마리아 퍼게이(83)다. 그는 50여 년간 강철(스테인리스 스틸) 가구를 만들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다. 찰흙을 주무르듯 철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독보적 스타일에, 디자인 하나당 보통 10개 내외만 만들기 때문에 대표작의 경우 가격이 억대가 넘는다. 이런 그를 패션업계가 그냥 놔둘 리 없다. 브랜드마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대세인 요즘,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펜디는 마리아 퍼게이를 파트너로 삼아 지난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였다. 7월 파리 몽테뉴 애비뉴에 문을 연 펜디 부티크에 3점의 가구를 전시한 데 이어 9월엔 ‘AD 인테리어전’을, 12월엔 디자인 마이애미 페어에 나서기도 했다. 궁금증은 여기서부터다. 퍼와 가죽을 브랜드 DNA로 삼는 펜디와 강철에 빠진 작가가 어떻게 조우할 수 있을까. 따뜻함과 차가움, 자연과 인공, 유연함과 딱딱함으로 대비되는 소재의 이질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작가는 보란듯이 6점의 작품을 선보였고, 그것은 퍼게이가 존재하는 한 강철의 변신도 무한대로 이어지리라는 증명처럼 여겨졌다. 지난해 연말 마이애미 전시를 앞두고 S매거진은 이 노장에게 e메일을 띄웠고, 그의 바쁜 새해 일정 탓에 한 달이 훌쩍 지나서야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만큼 철의 여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고도 강력했다.

예술계 ‘철의 여인’ 마리아 퍼게이 e메일 인터뷰

거울로 화려하게 꾸민 마이애미 전시장 전경.
‘사자 의자’의 클로즈업

강철과 다양한 소재 엮은 가구 선보여
디자인 마이애미 페어에서 그는 전시 주제를 ‘변모(metamorphosis)’로 삼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를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루이 16세의 화려한 바로크풍으로 꾸민 두 개의 방에는 6개의 작품이 화려하게 전시됐다.

작품들은 하나같이 강철과 다른 소재를 결합시켜 탄생됐다. 그런데 마리아주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다양한지 놀라울 정도다. 흰색의 강철 위에 여우 털과 가죽으로 만든 쿠션을 올린 의자(Pouf Goeland), 강철에 구리 망사와 LED를 곁들인 횃불 장식(Torchère Falmmes), 색을 입힌 강철 조각들이 마치 꽃이 만개한 커다란 화관처럼 보이는 보관함(Cabinet Pétales), 흑단나무와 계란 껍질, 가오리 가죽 같은 이질적 소재들과 강철을 결합시킨 보관함(Cabinet Arlequin), 밤나무·니켈·청동 등이 다양하게 조합된 테이블(Table Marrionnier) 등 한계가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만한 작품은 따로 있는데, 바로 의자 ‘Chaise Lion’이 그것. 강철에 밀짚청동 등을 넣은 상감 기법으로 호피 무늬를 만들고 여우 털을 팔걸이 부분에 덧대어 눈길을 끌었다. 정체성이 분명한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걸작임에 분명했다.

퍼게이에게 이 상반된 존재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냈는가 물었을 때 그는 ‘상반됐다’는 전제 자체를 부인했다. “모피와 강철이 다르다고? 절대 아니다. 고정관념이 그럴 뿐 실제로는 서로를 완성시켜 주는 존재다. 모든 소재들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비슷한 것이 될 수도, 대척에 설 수도 있다. 그걸 성공시키는 게 바로 장인의 힘이다. 파트너인 펜디 역시 모피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지 않나.”

요즘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장인정신’이 그의 입에서 또 한 번 나왔다. 이걸 좀 더 짚어보자 싶어 구체적 의미를 물었을 때 그는 ‘실험정신’을 꼽았다. “철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지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 누구도 다뤄보지 않은 소재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는 것, 그것이 장인정신이다.”

염색한 강철이 돋보이는 ‘꽃잎함(Cabinet Pétale)’.

60년대에 강철로 만든 가구 도전
그렇게 따지자면 그는 이미 작가의 길에 들어서기 전부터 도전적인 삶의 행로를 걸어왔다. 여섯 살이던 1937년 몰다비아(옛 루마니아령)를 떠나 파리로 도망쳤다. 러시아 스파이였던 아버지가 자신의 신원이 밝혀지자 고국으로 돌아갔고, 그와 어머니만 황급히 고국을 벗어났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유년 시절이 자신을 더욱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프랑스 국립영화학교에서 무대의상과 세트 디자인을 배운 그는 조각가 자드킨(Ossip Zadkin)의 아틀리에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54년 우연히 친구가 문 연 매장의 윈도 장식을 맡은 것이 계기가 돼 디자이너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에르메스, 크리스찬 디올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은으로 된 샴페인 바스켓, 담배 케이스 등 소품들을 만드는 일을 해오다 60년대 초 당시 강철 제조업체들로부터 제안을 받게 됐다. 강철이 주방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가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당시 유행하는 소재는 플라스틱이었고 사전 고객 조사에서도 강철 가구를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의뢰자는 난감해했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그에게 그저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예요(You will see)’라고.”

그는 당시 강철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내게 스틸은 부드럽게 반짝이는 완벽한 사막 같았다.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이 나의 의무 같았다.” 기술적 복잡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68년 내놓은 첫 번째 작품 ‘플라잉 카펫 데이베드’와 ‘링 체어’는 바로 히트를 쳤다. 같은 해 갤러리 메종 드 자댕(Galerie Masion de jardin)에서 열린 첫 전시에서 모든 작품을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이 구입하면서 커다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두 대표작이 나온 배경을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날아가는 침대 형상이 뚜렷하게 기억났다. 링 체어는 아이들에게 오렌지를 깎아주다가 떠올렸는데 갑자기 모양이 괜찮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조수 혹은 공방에 그걸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모두가 날 미친 사람처럼 쳐다봤다.” 그는 생각하는 바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했고 때로는 기술자의 손을 잡고 철판 어디를 잘라야 할지 어디에 힘을 줘 구부려야 할지 알려줬다.

스케치를 따로 하지 않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것은 그만의 방식이다. “이미 머릿속에 완성된 모습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 과정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내겐 그렇게 실현된다. 조립되고, 고정되고, 접히고, 펼쳐지는 그 모든 과정이 각각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입력돼 있다. 그 모든 것이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펼쳐진다. 아마도 신이 나에게 준 재능임은 분명하다.”
그러면서 이런 자신의 작품이 단순한 ‘가구’로 분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내가 만든 것들이 제공(Furnish)하는 것은 없다. 기능 대신 유머가 담긴 거다. 그림이나 보석처럼 귀중한 것을 집으로 들이는 것뿐이다.”

퍼게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Flying Carpet Daybed(1968)’와‘Cabinet Jardin Secret(2012)’.

“내 안의 늙은 여인과 타협하지 않는다”
90년대 그는 중동·러시아에 머물렀다. 아랍 왕실과 러시아 과두 정부의 저택을 꾸며달라는 주문이 끊임없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퍼게이는 당시를 ‘천일야화 같았던 시간’이라 표현하곤 했는데 “당시 엄청난 장인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고, 내 모든 작품이 그들 손에서 탄생했다”는 말로 그 시절을 표현했다.

2000년에 모로코로 이주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그는 2006년 뉴욕의 미술품 딜러인 수잔 데미쉬(Suzan Demicsh)의 눈에 들어 뉴욕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당시 데미쉬는 퍼게이를 만나 “뭔가 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던졌다. 그러자 퍼게이는 그 자리에서 5개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옷핀의 잠금장치로 장식된 캐비넷 ‘Macassar ebony cabinet’이 그때 나온 작품이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그는 50점을 새롭게 선보였다.

어쩌면 이 질문을 하려고 인터뷰를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50년간 늘 강철만 가지고, 그것도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느냐고.

이에 대해 그는 “나이를 잊고 산다”고 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이 든 여성에게 가끔 말을 걸긴 하지만, 절대 타협은 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표현도 썼다. 그러고는 뭔가 기념비적인 조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뭔지는 묻지 말라. 스스로를 놀라게 할 것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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