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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성화 불꽃 보며 차 마시니 좋아 … 예전엔 확 끄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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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자신의 6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을 마친 이규혁은 후련해 보였다. 그는 “앞으론 누군가와 경쟁하게 되더라도 져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가 느꼈을 고뇌가 전해졌다. 소치올림픽 1000m 레이스를 마친 후 물을 마시는 이규혁. [소치=뉴시스]

이규혁(36·서울시청)이 만나자고 한 곳은 소치 올림픽파크 안의 아들레르 아레나 노천카페였다. 그의 마지막 레이스가 펼쳐진 장소다. 옆에선 올림픽 성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성화 옆에서 이렇게 차를 마시니 참 좋다. 예전 올림픽 땐 성화를 확 꺼버리고 싶었는데”라며 웃었다.

 소치 대회를 끝으로 이규혁은 은퇴를 선언했다. 여섯 번이나 올림픽을 향해 달렸지만 올림픽 메달 없이 긴 질주를 멈췄다. 13일 밤(현지시간)은 그가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은퇴를 선언한 지 딱 하루가 지났을 때다. 23년간의 국가대표 레이스를 마친 이규혁은 중앙일보와 만나 조촐한 ‘올림픽 쫑파티’를 열었다. 그는 매우 편안해 보였고, 또 편안하게 말을 했다.

 - 이규혁의 올림픽이 진짜 끝났다.

 “기자들은 더 해야지. 만날 우리보고 열심히 하라면서 말이지. 기자들은 폐막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 결혼하셔야 할 텐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나, 더 즐길 거다. 운동만 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여자친구 없었다는 거 집에서도 다 안다.”

지난 12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이를 악물고 질주하는 이규혁. [소치=뉴시스]

 - 은퇴 후 딱 하루가 지났는데.

 “어젯밤부터 문자메시지 답장을 200통쯤 한 것 같다. 해방감이 느껴진다. 시즌 중 6개월 동안은 이런 거(도넛) 금기 식품이다. 케이크나 초콜릿 같은 거 좋아하는데 비시즌 때만 먹었다. 못 먹을 땐 진짜 맛있어 보인다. 이젠 마음껏 먹을 수 있지. 근데 참 이상하다. 지금은 별로 안 당긴다. 원래 큰 경기 끝나면 술 한잔했는데 이젠 안 그렇다. 한국 가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마치 군사훈련소에서 초코파이에 미치다가 휴가 나오면 안 먹는 것처럼.”

 - 은퇴와 함께 경쟁에서 벗어났다.

 “후, 20년이 넘었다. 1등을 하려면 내가 잘해야 하고 또 상대가 나보다 못해야 한다. 심지어 (대표팀 후배) 모태범이 뛴다고 해도 ‘나보다 잘해라’라고 말할 수 없는 게 경쟁이다. 물론 태범이가 금메달 따면 축하해주지. 그러나 지기 전까지는 지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런 마음을 오랫동안 갖고 있으니 내가 너무 싫어지더라. 앞으로 내가 뭘 하더라도 스케이팅할 때처럼 (기록이나 순위로) 평가받진 않을 것이다. 경쟁하게 되더라도 져주고 싶은 마음이다.”

 - 멋진 말이다. 아무래도 준비한 은퇴사 같은데.

 “난 한 번도 인터뷰를 준비해본 적이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속에 있는 말을 꺼내야 재미있다. 어제 경기 후 방송 인터뷰할 때 가장 슬펐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아달라고 하더라. 마지막 올림픽에 참가한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앞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없는 게 가장 슬프다고 했다. 캬, 내 말에 내가 감동했다.”

 - 그건 좀 느끼하다.

 “아니다, 듣는 사람의 감정이 메말라서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드라마 ‘가을동화’ 같은 걸 좋아하는 감성이 있다. 그게 내 진심이고.”

 - 스케이팅 후배들이 부담을 많이 느꼈다.

 “모태범과 이승훈이 메달 따지 못하고 (공동취재구역을) 말없이 빠져나가는 거, 나도 다 해봤다. 어떤 심정인지 안다. 올림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도 이제야 알겠더라. 태범이가 500m에서 4등 한 게 뭘 못한 건가. 메달을 따줄 거라는 기대를 혼자 짊어지게 해서 미안하더라. 우리나라는 (부담을 주는 게) 심하다. 태범이가 2010 밴쿠버 올림픽 때 금메달을 딴 뒤 ‘아무도 날 주목하지 않아서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땐 속으로 ‘미친 놈’이라고 했다. 사실 그래야 올림픽을 편하게 잘 준비할 수 있다. 난 항상 메달 후보여서 맨 앞에 섰다. 그게 힘들었는데 이번엔 태범이가 그랬다.”

 - 이상화도 그런 압박감을 느꼈다.

 “스프린터는 어쩔 수 없다. 상화도 사실 위험했다. 경기일 아침에 보니 긴장했더라. (여자 500m) 1차 레이스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차이가 크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흔들리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잘 이겨냈다.”

 - 4년을 준비해 1분의 승부를 벌인다. 참 가혹하다.

 “레이스 자체가 가혹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2006 토리노 올림픽 1000m에서 0.04초 차이로 4등을 했다. 내가 0.04초 더 빨라서 동메달을 땄으면 그게 엄청난 차이인 거다. 0.04초 느려서 졌다면 아쉬울 거 없다. 그보다 더 작은 차이로 이긴 적이 더 많으니까. 1000m를 타는 시간이 1분 조금 넘지만 레이스를 위해 먹고 자고 훈련하는 시간은 1시간, 24시간, 길게는 1년이다. 짧지만은 않은 승부다.”

 - 마지막 1000m 레이스를 회상하자면.

 “처음 200m는 너무 재밌었다. 선수들 표현으로 ‘킥이 먹는다’는 느낌. 온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느낌. 혹시 메달을 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600m를 지나면서 스피드가 떨어졌다. ‘나이 탓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경기력이 안 되긴 했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다 느꼈다. 마지막 레이스가 좋아서 이렇게 웃는 거다. 정신없이 레이스를 끝내고 돌아보니 마지막 레이스는 꼭 내 인생을 닮은 것 같다.”

 이날 12일 1000m 경기에서 이규혁은 1분10초04의 기록으로 40명 중 21위에 올랐다.

 - 주변에 사람이 참 많다.

 “(농구선수) 서장훈 형은 성질이 더러워도 정이 많다.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몇 년씩 날 서운하게 해도 내 경기가 끝나면 울어주는 사람이다. 싸이 형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다. 생일이 나보다 석 달 빠르지만 형이라고 한다. 형다운 면이 많으니까. 또 이제 월드 스타도 됐고. 내가 만든 자리에서 싸이 형이 지금의 형수를 만났다. 또 지금 내 일을 봐주고 있는 브리온컴퍼니 임우택 대표도 그런 분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을 들어줄 사람들이다.”

 - 앞으로 뭘 할 건가.

 “난 스피드 스케이팅을 너무 사랑한다. 후배들을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당장 코치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일단 선수촌을 떠나고 싶다. 멀쩡한 내 집 놔두고 20년 넘게 원룸(선수촌)에서 살았다. 자기계발을 더 하고, (고려대 체육교육대학원) 석사를 마친 뒤 박사과정도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선 가방끈이 중요하니까. 하하.”

 - 몇 점짜리 스케이터로 은퇴하는 것 같나.

 “은퇴했는데 또 점수를 매기나. 100점은 아니다. 올림픽 메달이 없으니까. 그러나 올림픽 메달이 없어서 여기까지 달려온 것 같다.”

소치=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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