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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식 난방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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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옛날 사람들은 난방을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호장·화려하기로 유명한「프랑스」의「베르사유」궁전도 그 난방시설만은 영점이다. 「루이」14세는 겨울철이면 포대기를 두르고 앉아「브랜디」를 마시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프랑스」만 해도 겨울이 그렇게 춥지는 않다. 으스스하기는 하지만 맵고 찌르는 듯한 추위는 없다. 우리 나라엔 화로가 있었다. 불을 잘 지펴 놓으면 온종일 훈훈한 기운을 감싸고 있다. 그러나 옛날의 어른들은 화로를 끼고 손바닥이나 싹싹 비비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의젓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온돌」의 역사는 상당히 길다. 기록들을 보면 적어도 4세기이전부터 서민의 난방은 이 온돌에 의존해왔다.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당 서에 보면『가난한 사람들은 겨울이면 긴 구덩(장갱)을 만들어 그 밑에 불을 때어서 따뜻하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대체로 한반도의 북부와 중국동북부지방의 거주민들, 그러니까 부여 족 계통의 민족에 의해 온돌이 시작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들 북방계민족은 4, 5세기 무렵에 활발하게 남하했으며, 따라서 고구려·백제 등에 퍼졌다. 고 시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한반도 전역에서 온돌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세의 학자들이 옛날의 기록을 보고 그대로 주택을 짓고 온돌을 설치해본 적이 있었다. 중부지방에선 겨울에도 실내온도가 15도C는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한다. 온돌은 상당히 이상적인 난방방식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차차 좌식의 기거양식에서 입식으로 옮겨가고 있는 과도기의 생활을 하고 있다. 따라서 온돌만으로 그 실내온도를 쾌적하게 만들기는 어렵게 되었다. 또 주택의 양식도 온돌에 적합한 옛날의 그런 모습에서 많이 바뀌었다. 난방을 달리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근년의 연료비 부담은 우리의 생활을 입식에서 다시 좌식으로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올 겨울의 연료문제를 생각하면 좌식은 커녕 드러눕고 살아야하는 와식 생활을 해야할 형편이다.
연탄과 석유의 비용비율은 적어도 2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똑같은 열량을 얻기 위해 경유의 경우는 연탄보다 2·7배의 비용이 더 든다. 등유의 경우는 3배에 가까운2·9대1이다.
서민들이 하루아침에 연탄난로를 집어치우고 석유난로로 바꾸어놓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석유 류의 경우 시설비는 그것대로 따로 더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연탄난방이 수월한 것도 아니다. 중탄 제조가 금지되면서 연탄난로는 실제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고래의 좌식 생활은 고사하고 와식으로 후퇴해야 하는 우리의 생활은 고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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