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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정체성은 ‘통합과 포용’

중앙일보

입력

◇ 경기지역은 한강유역을 비롯해 한반도의 노른자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곳을 차지하는 정치세력이 역사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

경기지역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구심력 있고 통일적 모습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경기지역은 한강유역을 비롯해 한반도의 노른자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곳을 차지하는 정치세력이 역사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 고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고, 결국 최후에 이 지역을 차지한 신라에 의해 통일됐다. 또한 경기지역은 삼국 간에 서로 부딪치면서 문화가 직접 접합(接合)된 지역이었다.수도 둘러싼 물자유통의 중심지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개성을 수도로 정하고 보다 개방적이며 통합성을 갖춘 중세국가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경기지역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1천 년 이상 계속 중앙집권국가의 수도를 감싸 안고 역사의 중심무대로 위치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역성을 드러내기보다 수도를 보완해 우리 민족체(民族體)의 발전과정에 구심적·통합적 역할을 했다.경기지역은 정치적 중심지가 되면서 아울러 경제적으로 물자유통의 중심지가 됐다. 역대 왕조들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서 전국으로부터 부세를 거둬 중앙으로 집중한 다음 다시 분배하는 체제를 취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시대 이래로 수도를 둘러싼 경기지역은 역로(驛路)와 조운(漕運)이 모여드는 물자유통의 중심지를 이뤘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고려는 초기에 호족들의 지방문화가 발달한 가운데 그들을 포섭하면서 분립성을 극복하고 통합성을 끌어낸 중심이 됐다. 고려왕조는 각 지방세력의 자율성을 인정한 위에서 중앙집권체제를 세웠으며, 그것을 이끌어간 중심세력이 바로 근기(近畿, 서울에서 가까운 곳) 지역 출신들이었다. 후삼국의 분립 등 지역성이 강조된 상황에서 통합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의 문화수준이 높고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가 통합되는 중심지였다고 해서 자기 특징 없이 포괄적이기만 한 문화를 영위한 것은 아닌 것이다.

◇ ‘경기도좌우주군총도(京畿道左右州郡摠圖, 보물 제1596호)’.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도로 조선시대 경기도의 좌도와 우도에 속한 군현의 위치를 간략하게 그렸다.

기호문화권의 중심부 경기도언어·문화·풍속 등으로 본다면 황해도와 충청도를 포함하는 기호문화권(畿湖文化圈)이 형성됐으며, 경기도는 그 중심부를 이뤘다. 특히 사상사에서 조선 16세기에 기(氣)철학을 중심으로 하는 화담학파(花潭學派)가 형성돼 이후 17세기 사상계를 주도한 율곡학파(栗谷學派)의 학문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세기에는 강화학파(江華學派)와 근기학파(近畿學派)의 존재가 두드러지는데, 이들은 보수지배이념으로 경직화한 성리학을 비판했다. 강화학파는 성리학에 비해 민에 대한 인식이 진보적이고, 실제 마음으로 사적인 이익을 극복하는 양명학을 받아들였다. 사회모순이 심화되면서 이익·정약용과 같은 근기지역의 실학자들이 공리공담(空理空談)을 배격하고 구체적인 현실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농촌사회의 모순 속에서 농민이 겪는 고통을 공감하면서 토지제도와 행정기구 기타 제도적 개혁을 주장했다. 조선 후기 경기지역에 일어났던 두 사상경향은 보수화된 사회에서 현실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면서 비판적·실천적인 사상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이는 경기도의 문화전통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 정몽주(1337∼1392).

경기도의 정체성은 ‘통합과 포용’현대에 들어와 산업화가 급속도로 추진되면서 경기도는 서울과 함께 한국 경제발전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문화적 정체성의 측면에서는 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도는 소위 수도권으로 위치하면서 독자적 위상을 상실하고 모든 문제를 서울과 연관해 인식함에 따라 서울에 종속·부수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토착인구보다 외지에서 유입한 인구가 많아진 것도 자기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요인이 됐다.그러나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중심부이자 경기도민의 의지를 결집해 지역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적 삶을 확보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살아 내려오고 있는 경기도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고 이를 대한민국의 중심부이자 1200만 경기도민의 터전으로서의 경기도로 우뚝 설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되도록 해야 한다.앞서 살펴본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경기도의 정체성이 다름 아닌 ‘통합(統合)과 포용(包容)’이었으며, 이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구심(求心)으로서 기능했다는 점이다. 실학이 발달한 것도 이러한 정체성의 측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또한 이것은 21세기 한국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배타적인 지역성이 많이 잔존하는 타 지역과는 달리 경기도는 어울림과 아우름을 앞세워 새로운 희망의 조국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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